"연극 잘하려면 문화·사회도 알아 야죠"|「사회문화 연구소」차린 연극연출가 기국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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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젊은 연출가 기국서씨(39)는 항상 새로운 것을 모색하고 과감하게 실천에 옮김으로써 연극계의 주목을 끌어온 인물. 그가 최근 삼청동에 자그마한 공간을 마련했다.
『극단사무실을 마련하면서 명함에「사회문화연구소」라는 이름을 박았습니다. 연구소라고 해서 뭐 거창한 연구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모여 우리사회와 문화에 대해 얘기해 보자는 뜻이죠.』그가 이번에 새로 벌인 일은 연극계로서는 생소한 연구소설립. 그의 말대로 사회문화연구소에서 세미나·심포지엄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단순한 연구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운동의 개척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연극도 문화인만큼 우리문화전반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고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사회를 알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수 순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사회와 문화를 얘기하자는 거죠. 그리고 중요한 얘기는 책으로 만들어 널리 알릴 겁니다.』
그는 이미 출판활동을 시작했다. 자신이 지난 5월 연출한 작품『활·활·활』에 이어 현재공연 중인 작품『미아리텍사스』팸플릿에「궤적과 실험」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연구소에서의 토론내용을 실었다. 그리고 앞으로「궤적과 실험」을 별도의 동인지로 출판할 예정이기도하다. 궤적은 과거고 실험은 미래를 의미하는데 그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하고자 한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연구소의 문을 음악가·화가·영화인등 모두에게 열어 놓았다.
『문화와 예술을 얘기하고 싶은 모든 사람과 만나고 싶습니다. 서로 만나는 과정에서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창작작업의 연계성도 찾아갈 수 있겠죠.』
그가 연극과 인연을 맺은 것은 중앙대 국문과 재학시절 아마추어연극 동인활동을 시작했던 때부터. 이후 그는 77년 동생 기주봉씨가 단원으로 있던 극단「76단」에 가입했으며「일을 시작하면 뭔가 남기고 싶어하는 이상한 성격」때문에 지금은 극단대표가 되었다.
『세계에 내놓을 만한 우리의 연극을 만들고 싶어요. 판소리·굿·마당극 등 우리 고유의 것들은 연극의 일부분이며, 현대적이지 못하죠. 이런 전통을 모두 포괄하면서도 현대화된 연극형식을 갖춘 작품을 언젠가 내놓겠습니다.』
그는『햄릿』시리즈로 이미 4편을 연출했으며 서울연극제에 5번째 작품을 내놓았다. 그리고 지금은 말초적인 소재인 창녀 얘기를『미아리텍사스』란 작품에서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작품의 소재와 무관하게 정치를 얘기하고 있다.
『현대인의 황폐화된 정신세계는 결국 우리를 숨쉬기조차 힘들게 하는 정치 때문 아닙니까. 저는 이러한 현실을 다루고 있는 것이고 그러자 니 사회과학과 철학도 연구해야 하는 것이죠.』
결국 그의 작품세계는 다른 연극인보다 앞서「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던 것이며, 그는 선뜻「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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