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김병준씨 꼭 재기용해야 직성 풀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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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차 핵실험 임박설로 북한 핵 사태가 더욱 위중해지는 와중에 노무현 대통령이 '오른팔 측근'이자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씨를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에 내정했다. 김씨는 7월 말 교육부총리에 임명됐다가 논문 중복 발표 등 교수 시절의 잘못된 처신으로 국회 동의를 받지 못하고 사퇴한 바 있다. 이번 인사는 여러 면에서 사리에 맞지 않다.

도덕적 하자로 물러난 인물은 정책기획위원장 같은 중책을 맡아서는 안 된다. 아니 중책이 아니더라도 의미 있는 공직에는 마땅하지 않다. 논문 이중 게재 같은 것이 잘못이 아니었다고 믿는다면 김씨는 교육부총리를 물러나지 말았어야 한다. 그때는 물러나고 이번엔 들어오는 변신은 국민에 대한 조롱이다.

대통령이 김씨를 다시 부른 것은 아주 잘못된 메시지를 주고 있다. 김씨는 오래전부터 '정치인 노무현'의 브레인이었다. 수도 이전이라든지 지방분권, 평준화 개혁 같은 부분에 대통령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관계로 보아 자주 외교, 대북 유화정책, 통일노선 같은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조언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북정책의 총체적 실패라는 북한 핵실험 사태를 맞아 대통령은 전반적인 국정운영을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런 재검토는 대북정책이나 동맹외교뿐 아니라 친북.반미 세력의 발호, 과도한 계급적 대립, 왜곡된 평준화 논리 같은 다른 분야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그런 차에 국정 실패에 책임이 적지 않은 옛날의 브레인을 다시 부른 것이다.

시기도 문제다. 김씨는 몇 달 전만 해도 인사 논란의 시한폭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국론 분열이 심려되는 현재의 사태에 대통령은 슬쩍 김병준 카드를 꺼냈다. 갈등 조정을 추구해야 할 국정 최고 운영자로서 무책임하고 국민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정책기획위원장은 대통령을 만나 여러 주요 국정을 논할 수 있는 자리다. 김씨가 북핵 사태 해결에서도 대통령에게 잘못된 길을 제시할지 우려스럽다. 대통령 주변에 그렇게도 인물이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