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DJ '햇볕' 비난하다 찬양 나선 한나라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한나라당이 뜬금없이 '햇볕정책'을 감싸고 나선 것은 정말 역겨운 일이다. 강재섭 대표는 전남 지역을 방문해 "남북관계와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잘했다고 자랑하지만, 참여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까지 망쳐 놨다"고 말했다. 누가 들어도 햇볕정책은 잘했는데 포용정책은 잘못한 것이라는 말이다.

뒤늦게 김형오 원내대표가 "노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이 김대중 정권 때보다 더 잘못됐다고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너무 구차하다.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을 구분하려는 발언은 강 대표뿐이 아니다. 김성조 전략기획본부장도 같은 날 "햇볕정책은 강온정책을 병행했지만 포용정책은 원칙 없는 일방적 대북 지원"이라고 말했다. 이병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열린우리당을 겨냥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가진 최소한의 시대적 정당성에 단순 편승해 표를 얻으려 하는 얄팍한 술책"이라고 비난했다.

갑자기 햇볕정책을 둘러싸고 아부 경쟁을 벌이는 배경은 분명하다. 10.25 재.보선, 혹은 차기 대선을 앞두고 호남 민심을 끌어들이려는 속셈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직도 이 지역 민심에 영향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을 사실상 승계한 열린우리당은 이해한다 하더라도 한나라당의 언동은 그야말로 정체성을 상실한 행태다. 햇볕정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게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다. 그동안 한나라당이 햇볕정책에 대해 뭐라고 해왔는가. 김대중 정부 내내 '퍼주기'라고 비난해오지 않았던가.

여론의 비난이 따갑자 한나라당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시 뒤집었다. 이런 혼란은 한나라당 스스로 대북 문제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변명해도 그런 발언들은 햇볕정책을 정당화해 주고, 자신들의 발목을 잡게 된다. 표만 보이면 소신을 팽개치고 갈팡질팡해서는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없다. 이런 식의 얄팍함으로 정권을 잡은들 나라를 바른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는가. 한나라당 역시 실망만 안겨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