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든 실버 "젊은이 못잖게 일 잘 할 수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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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어르신 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 희망자들이 기업체의 채용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조용철 기자

서울 우이동에 사는 정의식(71)씨가 면접에 앞서 자원봉사자의 화장 서비스를 받고 있다.

17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1층 인도양 9홀.

서울시 주최로 '2006 어르신 일자리 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1100여 평은 '실버구직자'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행사장 입구에 설치된 '무료 복사대'에는 이력서를 복사하기 위해 100여 명이 길게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10여 곳의 채용 게시판 앞에는 구인정보를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50여 명씩 몰렸다. 60세 이상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마련된 행사로 70세 이상의 어르신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구직자들의 사연도 가지가지였다.

경기도 일산에서 왔다는 김순희(61.여)씨는 "자식들에게 의지하기 않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필요하다"며 "젊은 사람 못지않게 일을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기 보기'에 원서를 냈다. 장복례(64.여.서울 봉천동)씨는 "아파트 경비 일을 하던 남편이 허리를 다쳐 꼭 일자리를 구해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고 밝혔다. 최춘희(61.여.서울 화곡동)씨는 "용돈이나 벌어볼 생각으로 나왔는데, 노인 모델로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기대를 나타냈다. 오전 9시쯤 행사장에 도착했다는 이진행(70.서울 거여동)씨는 "아파트 경비직을 희망하는데 오늘 원서를 내는 것은 물론 즉석에서 면접까지 봐 당황했다"며 "나의 장점을 제대로 설명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람회의 열기는 주최 측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손용민 박람회 사무국장은 "이날 행사장을 찾은 사람은 1만5000여 명으로 18일까지 3만 명 이상의 실버구직자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나이가 들어서도 일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지만 경제난을 반영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당초 이날 오전 10시에 문을 열 예정이었으나 오전 9시부터 사람들이 기다리자 개장 시간을 30분 앞당겼다.

박람회에서는 공공부문의 일자리가 인기를 끌었다. 교통서포터즈.지하철 도우미 모집 부스에는 50여 명씩 기다렸다. 서울시 노인복지과 김인철 과장은 "교통서포터즈와 지하철 도우미 지원자가 각각 400여 명을 넘었다"며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데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일자리인 만큼 믿고 일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라고 말했다. 격일로 하루 8시간씩 일하는 교통서포터즈는 월 50만원, 지하철 도우미는 20만원 정도 벌 수 있다.

또 베이비시터나 국가 공인 시험 감독관 등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되는 자리에는 업체별로 지원자가 300~500명씩 몰려 경쟁률이 10대 1을 훌쩍 넘어섰다.

홈쇼핑의 노인 모델을 뽑기 위한 즉석 카메라 테스트도 곳곳에서 열렸다. 30여 명의 모델을 뽑는 기획사 엔와이컴 조은진(24)씨는 "행사장을 찾은 분들이 너무 많아 끊임없이 사진을 찍었다"고 전했다.

박람회에서 일자리를 쉽게 구하기는 힘들 전망이다. 20여년간 다국적 기업의 대리점을 운영했다는 김두순(68)씨는 "참여 업체 대부분이 단순 용역을 원해 몇 군데 지원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일부 참가자는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이나 서류를 준비하지 않아 접수 창구에서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18일 오후 5시까지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412개 업체가 참가했으며 채용 예정 인원은 3900여 명이다. 업체별로 서류 전형과 면접 등을 거쳐 합격자는 이르면 11월부터 근무한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 취업 박람회에서 직장 구하려면

▶ 이력서를 준비하세요

-컴퓨터 또는 자필로 깨끗하게 작성

-학력.경력.자격 증빙서류 첨부

▶ 적극적인 자세로 나오세요

-행사장에서 면접할 경우에 대비

▶ 눈높이를 낮추세요

-대졸 청년의 취업률도 50% 이하

-채용인원 많은 직종 선택이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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