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최우석칼럼

외환 위기와 북 핵실험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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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번에도 '우리 민족끼리'와 자주 외교를 드높이 외치는 중에 호되게 얻어맞았다. 얼마 전에 미사일을 쏘아대도 설마 하고 낙관하다가 불의의 강타를 당한 것이다. IMF 사태는 미국 등 우방의 협조로 어떻든 수습되었으나 한국 경제는 크게 멍이 들었다. IMF 사태가 그토록 심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왜 그렇게 됐는지 공인된 환란백서(換亂白書)가 없다. 신기한 일이다. 감사원 감사와 국회 청문회, 또 소위 '환란 주범'에 대한 기나긴 재판까지 했으나 모두가 납득할 만한 종합보고서가 없는 것이다. 남의 탓만 했지 객관적 실체 조사엔 관심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 그 지경까지 갔었는지 이유라도 알아야 재발 방지를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러니 환란에 한몫씩 거든 사람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지금 북핵 사태도 비슷하게 가고 있다. 햇볕정책이란 이름 아래 그토록 정성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북쪽은 핵실험까지 했다. 평소 남쪽이 어떻게 보였기에 핵실험을 해도 된다고 판단했을까. 비핵화 공동선언을 일방적으로 파기해도 괜찮다고 본 것일까. 또 남쪽의 여러 지원을 받으면서 열심히 핵개발을 하는 배짱은 누가 길러준 것일까. 일이 크게 잘못된 것이다. 외교안보에 치명타를 맞았다고 볼 수 있고 경제사회적으로도 엄청난 충격파다. 그런데도 책임을 통감하기는커녕 온갖 궤변과 둔사(遁辭)가 난무하고 있다.

국회 토론 과정을 보면 운동권 MT 하듯 기발하고 자유분방하다. 사실을 제대로 보려 하기보다 자기 기준에 의한 재단과 주장이 더 많다. 이러니 제대로 된 대응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정부 입장과 대책도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도 97년 통화위기 땐 일이 터지고 나서는 한동안 자숙하고 일관된 정책으로 수습작업을 했다. 이번엔 일을 어렵게 만든 장본인들이 더 큰소리를 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번 북핵 사태는 IMF 사태보다 더 심각하며 지금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 볼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제재가 시작되고 그에 대한 북쪽의 대응에 따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궁지에 몰린 북한이 어디로 튈지 예측불허다. 정부당국의 냉정한 현실 파악과 기민한 대책이 필요한데 그 점에서 매우 걱정인 것이다.

97년 통화위기 때도 여름부터 일이 벌어졌으나 연말 대선을 앞둔 표 계산 때문에 실효성 있는 조처를 못했다. 미국.일본과의 공조도 부족했을 뿐 아니라 감정까지 상해 놓은 상태였다. 국가 부도 직전에야 허겁지겁 달려가 사정해 봤지만 미국은 이미 IMF 관리를 작정하고 있었고 일말의 희망을 걸었던 일본은 미국 핑계를 댔다. 중국으로부터는 "1000달러 소득국이 1만 달러 소득국에 어떻게 돈을 빌려줍니까"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번 북핵 사태도 내년 대선의 표 계산이 냉정한 처리를 어렵게 할 것이다. 또 미국.일본 등 우방과도 다소 소원해져 있다. 우리 처신에 따라 지난번처럼 외톨이가 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일이 이 지경이 되고서도 우방들과 다른 길을 가면서 대화와 협상을 외치고 있는데 정말 순박한 건지 무슨 다른 심모원려(深謀遠慮)가 있는 것인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번 북핵 사태는 지난 통화위기 때처럼 IMF 관리로 끝날 일이 아니며 나라의 명운이 걸린 심각한 국면임을 알아야겠다. 따라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좀 더 경건한 마음으로 심사숙고하고 언행에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나라의 명운을 짊어지고 있는 국정 최고 책임자는 더욱 그렇다.

최우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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