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인사 받고 거래소 상장 문제 해결하려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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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외압을 제기하며 10일 증권선물거래소 감사 후보 추천위원장을 사퇴한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13일 거래소가 감사 선임을 거래소 기업공개(IPO) 문제와 연관해 밀어붙이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권 교수는 이날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법에 근거한 일정을 보면 거래소가 올 상반기에 IPO를 끝내야 했는데도 아직 지지부진하고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며 "(이영탁) 이사장이 청와대에서 재경부를 통해 내려보내는 인사를 감사로 받고 바터(맞교환)로 거래소 IPO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거래소 측은 "IPO와 감사 선임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정환 경영지원본부장은 "재경부는 2003년 8월 마련한 증권선물시장 선진화 방안에서 참여정부 임기 내에 거래소 상장을 완료시킨다는 일정을 제시한 바 있고, 현재 상장추진위원회를 통한 상장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또 청와대 측이 "외압이 아니고 협의 수준"이었다고 해명한 데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상식적으로 힘센 감독기관이 피감독기관과 인사 문제를 놓고 협의하는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관치금융.관치인사보다 더 나쁜 청와대의 청치금융.청치인사"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당시 (감사 자리가 비었던 7월 초) 박병원 재경부 차관이 김모 회계사를 봐달라고 부탁할 때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했다"며 "오랜 기간 사귀어온 친구(박 차관과 권 교수는 고교 동기동창)가 청와대의 압력을 받아 본인의 뜻과 달리 나에게 부탁하는 모습을 보기 괴로웠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추천위원 모두가 (청와대가 추천한) 김모 회계사라는 사람에 대해 적격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자 재경부가 '청와대에서 싫어한다'며 다른 사람을 뽑는 걸 강하게 말렸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의 '코드 인선' 기준에 대한 폭로도 이어졌다. 권 교수는 "(김모 회계사) 문제가 해결됐는데도 저쪽(청와대)에서는 비고시 출신에 비재경부 출신이어야 한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차관은 이날 재정경제위원회 국감에서 외압 의혹이 제기되자 "청와대가 명시적으로 요구했던 부분은 (현재 재경부 출신인) 경영진 견제가 안 되기 때문에 재경부 출신은 안 보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며 "권 교수와 만난 적은 있지만 인사 압력을 넣은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거래소 노조가 청와대 외압 의혹을 제기하며 파업을 선언한 7월 말 정태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거래소 감사 문제는 거래소가 알아서 할 일로 청와대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손해용.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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