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흥행용 국민경선제는 위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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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열린우리당은 대통령 후보를 일반 국민의 투표로 뽑기로 했다. 당원과 비당원을 구분하지 않고 지역 편차만 조정하는 '완전 국민참여 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라고 한다. 기존의 정당 대의원이란 것이 국회의원 등 일부 정치인의 손에 좌지우지돼 온 점을 감안하면 일반 국민의 참여를 늘리는 것은 일종의 발전이다. 그러나 이 제도를 도입하게 된 배경과 감춰진 문제점들을 따져보면 흔쾌히 동의하기 어렵다.

열린우리당은 그동안 진성당원제를 외쳐 왔다. 충성심이 강한 당원이 당의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는 기조가 갑자기 정반대로 돌아서니 어리둥절하다. 열린우리당은 2002년 당원과 국민을 절반씩 넣은 선거인단으로 흥행에 성공한 경험을 잊지 못하는 것 같다. 당내에 경쟁력 있는 후보가 없어 어떻게든 당 외 인사를 경선에 참여시켜야 하는 고육책이기도 하다. 최근 논의를 시작한 한나라당도 근본적 검토 없이 열린우리당을 따라가고, 자신에 대한 유불리만 따지고 있다.

미국에서도 오픈 프라이머리 방식을 채택하는 주는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한 유권자가 여러 정당의 예비선거에 동시에 참여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도 있었다. 오픈 프라이머리 자체에 대한 위헌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념과 정책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인 정당의 결사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다. 책임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일반 국민의 참여를 독려해 예비선거를 하는 것은 사전 선거운동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 장소를 길거리까지 허용할 것이냐, 지하철 등도 허용할 것이냐, 실내로 제한할 것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선거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하루용 입당원서를 받는 것은 차라리 희극이다. 후보마다 지지자들을 무제한으로 동원할 수밖에 없고, 약한 상대를 고르기 위해 경쟁 정당 당원과 지지자들이 역선택에 참여할 수도 있다.

이는 선거법 자구만 고쳐 끝날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근본 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 지역별 가중치에 대한 논란과 사전선거운동 시비, 엄청난 선거비용 등 극심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지 않은 채 오픈 프라이머리를 추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