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비타민] 묘지 가는 길 울타리 치지마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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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묘지를 둘러싸고 있는 토지의 주인이 "재산을 보호하겠다"며 땅 주위에 울타리를 설치해 성묘 가는 길이 막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주도 해안동의 야산에 가족 묘지가 조성돼 있는 양모(63)씨는 2002년 묘지로 가는 지름길이 돌담에 의해 막혀 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묘지 주변의 땅을 사들인 사람이 "땅을 보호하겠다"며 토지 밖 경계를 따라 돌담을 쌓은 것입니다.

묘지의 뒤쪽은 산인 데다 돌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한참을 걸어 자물쇠가 채워진 철문을 통과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씨는 하는 수 없이 수차례 담을 넘어 벌초와 성묘를 해야 했습니다. 간간이 땅 주인과 다툼도 벌였습니다. 참다못한 양씨는 2004년 서울중앙지법에 "조상의 묘에 마음대로 갈 수 있도록 담장 3m(차량이 통과할 수 있는 넓이)를 허물어 달라"는 '통행권 확인' 소송을 냈습니다. 1, 2심 법원은 "철문을 통해 묘지에 걸어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담장을 허물어 달라는 요구는 과도하다"며 땅 주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차량으로 통행할 권리까지 인정해 주는 것은 과도하더라도 양씨가 도보 통행을 할 의사가 있다면 이를 보장해 줘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넓이로 담장을 허물라는 것입니다. 이번 판결로 땅 주인은 양씨의 성묘 가는 길을 보장해 줘야 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곳에 농작물 등이 심어져 있다면 양씨 역시 땅 주인에게 일정 금액을 보상해 줘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결의 취지입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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