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선이 「거여」에 내린 채찍(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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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구서갑구와 진천­음성의 보궐선거 결과는 한마디로 민자당의 참패라고 해야할 것이다. 두곳중 한곳에서는 승리했으니 승패가 반반이라고 할지 모르나 이 두지역이 전통적으로 여당의 아성이었다는 점과 전열이 정비되지 않은 야권이 강력한 후보를 내세우지 못했는 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점,여권이 선거에 동원한 엄청난 노력,현저히 낮은 투표율 등을 생각하면 민자당의 완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선거결과는 3당통합 후 여권의 국정운영과 정치행태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 표시이자 일종의 경고라고도 말할 수 있다. 정부ㆍ여당으로서는 이제 왜 이런 패배가 왔는지를 냉정히 반성하고 선거결과가 보여주는 민심을 겸허히 수용함으로써 일대 자세 전환을 보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민자당이 패배한 원인은 두가지다. 가장 큰 직접적인 원인은 거대여당이 선거과정에서 보인 무리와 횡포에 있다고 본다. 정호용씨를 사퇴시키는 일련의 과정과 음성에서 있었던 폭행사건,인력ㆍ물력을 총동원하면서까지 이기고만 보자고 밀어붙인 선거운동방식,이런 상식과 상궤을 벗어난 민자당의 태도가 유권자의 등을 돌리게 했다고 믿는다.
민자당의 이런 태도는 두곳 보궐선거에서 민의를 묻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강력한 힘으로 민의를 예정된 결과로 몰고가려는 것처럼 보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가령 대구의 투표율이 13대총선에 비해 무려13.6%나 떨어진 것은 정씨 사퇴후의 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환멸을 말해주는 것이며,조직이나 지명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소야당의 후보들이 예상외의 득표를 한 것도 이런 민자당에 대한 실망과 반감에서 나온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민자당이 패배한 또 한가지 원인은 3당통합의 정당성과 유효성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3당통합으로 확보한 거대한 힘이 국익과 민생을 위해 긍정적이라고 볼 사례를 여권은 지금껏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지난 임시국회에서의 횡포,대소외교에서의 잡음등으로 3당통합 후의 정국은 국민에게 실망과 걱정을 끼쳤고 경제위기나 각종 현안의 해결에 있어서도 3당통합 전이나 후나 다를 바가 없어 통합때 내건 현란한 명분이나 수사를 무색케 했다.
이처럼 3당통합의 정당성은 보여주지 못한 채 보궐선거에서 각종 무리와 횡포를 범했기 때문에 낙승해도 내세울 것이 없을 두지역에서 모두 그런 선거결과가 나온 게 아닌가.
민자당의 패인을 이렇게 볼 때 앞으로 정부ㆍ여당이 취해야 할 태도는 자명하다고 본다. 소여에서 하루 아침에 거여가 된 데 따른 오만을 버려야 한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낡은 사고방식은 이제 도시든,농촌에서든 통하지 않는다. 거대의석으로 힘은 확보했는지 모르나 정당한 목표,정당한 방식에 의해 그 힘이 행사되지 않으면 그것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체정치권은 이런 선거판은 이번 선거를 마지막으로 끝낼 수 있는 조치를 시급히 강구해야 한다. 작년 두차례의 재선거에 이어 이번 두곳 선거도 과열ㆍ타락ㆍ탈법의 선거판이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선거법의 개정,정치자금의 공개와 규제 등 제도적 개선과 선거와 정치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정당과 정치인의 맹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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