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비즈니스] CEO 꿈꾼다면 매니어가 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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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형수 기자

코리아나 유상옥(73.사진) 회장은 수집광이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30여년 동안 모아 온 각종 연하장과 종(鐘), 유물 등이 수만 점에 이른다. 이 수집품 중 1000여 점을 추려 13일 오후 6시(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 화장문화 전시회'를 연다.

한불 수교 120주년을 맞아 "수집품을 전시해달라"는 프랑스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전시물은 그가 화장품 사업을 시작하며 모아온 전통 화장용구들이다. 신라시대 동경(銅鏡), 고려시대 분합(粉盒) 등 문화적 가치 있는 유물도 여럿 포함됐다. 유 회장은 "화장품의 본 고장 파리에서 우리 선조들의 전통 화장 문화를 보여줄 기회로 생각해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유 회장은 회사일이 잘 안돼 적잖은 마음고생을 해온 터라 이번 전시회를 여는 감회는 남다르다. 그 만큼 경영에도 다소 여유가 생겼다.

코리아나는 1988년 제품 출시 직후 바로 화장품 업계 2위로 뛰어 오르는 등 탄탄대로를 달렸다.당시 톱 탤런트 채시라씨를 광고 모델로 내세운 '머드팩 제품'은 전국에서 불티나게 팔렸다.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코리아나의 설자리는 좁아졌다. 최고급을 지향하는 외국계 브랜드와 저가(低價)를 앞세운 브랜드숍 화장품의 파상 공세에 밀렸다. 2000년 이후 매출은 곤두박질쳐 2003년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코리아나의 강점인 기존 방문판매 조직(뷰티플래너)을 재편하는 한편 인터넷쇼핑몰.홈쇼핑 등 새로운 유통 경로를 적극적으로 넓혀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매출은 정점을 쳤던 1998년(4500억원)의 반토막도 안 되는 1250억원대에 머물러 있다. 업계 순위에서도 신생 중저가 브랜드인 더페이스샵.미샤 등에 밀렸다. 코리아나는 올해 기업의 명운을 걸었다. 5월 ㈜CJ 육가공부문장 상무 출신인 김태준씨를 마케팅 부사장으로 영입해 기존 판매 방식에 대한 수술에 나섰고 중국.미국.러시아 등 해외 시장 개척에 팔을 걷었다. 6월엔 중국 톈진(天津)에 현지 공장도 세웠다. 중국 본토뿐 아니라 대만.홍콩 등 중화권(中華圈) 시장에서 여느 한국 브랜드보다도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코리아나(Coreana)'라는 브랜드 이름 자체가 '한류(韓流)' 바람을 업기에 그만이라고 판단했다. 유 회장이 최근 '파리 화장문화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대외 활동 반경을 넓히는 데에는 회사의 해외 마케팅을 돕자는 뜻이 담겨있다. 전세계 화장품 시장에서의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국내 회장품 업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유 회장은 "수집 취미가 회사일에 활용되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CEO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최근에 가본 박물관이 어디인지,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는지 꼭 묻는다고 한다. 경영인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문화적 소양'을 갖춰야 한다고 그는 늘 강조한다. 특히 그는 기본적으로 '우리 것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문화 마케팅에 눈을 뜰 수 있다고 말했다. 유 회장은 "지금은 코리아나가 잠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회사의 역량을 결집하면 예전 명성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필규 기자 <phil9@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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