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휴전 관련국 득실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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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유엔이 중재한 이스라엘-헤즈볼라 휴전 이틀째인 15일 협정이 대체로 잘 지켜지는 가운데 관련국들은 휴전의 득실을 꼼꼼히 따져보고 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헤즈볼라는 휴전 유지와 향후 대책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는 승리했다. 헤즈볼라에 상당한 타격을 입혀 공격 위협을 크게 줄였으며 평화유지군이 배치될 폭 30㎞가량의 완충지대도 확보했다. 하지만 1973년 중동전 이후 단일 작전으론 가장 많은 110여 명의 전사자가 발생, 강군의 자존심을 구겼다. 군 내부 갈등으로 작전 중 지휘부가 교체되기도 했다. 전쟁 명분이 된 피랍 병사 두 명도 구출하지 못했다. 여기에 레바논 민간인 피해로 국제 여론이 악화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4일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를 비롯한 이스라엘 지도부가 앞으로 정치적으로 큰 후폭풍에 시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헤즈볼라는 14일 전단을 뿌리며 "신성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자축했다. '최강 게릴라'라는 찬사를 받으며 아랍권에서 인기를 높였다. 그럼에도 실질적으로 얻은 것은 별로 없다. 군사 손실이 큰 데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배치되면 최대 거점인 레바논 남부를 잃을 수도 있다. 유엔의 무장 해제 요구 결의에 따라 국내외 압박도 거세질 전망이다.

기독교(대통령)와 이슬람 수니파(총리).시아파(국회의장)가 권력을 나누고 있는 레바논 정부도 잃은 게 많다. 많은 주민이 살상된 데다 인프라도 대거 파괴됐다. 시아파를 기반으로 하는 헤즈볼라가 크게 약화하면서 이들과 대립해 온 수니파와 기독교 세력은 상대적으로 덕을 봤다. 그럼에도 유엔 결의에 따른 헤즈볼라 무장 해제를 이들이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드는 바람에 체면 손상을 감수해야 했다. 프랑스와 아랍권에서 나온 즉각 휴전 요구에 반대하다 국제 여론에 밀려 타협안을 수용했을 뿐 사태를 방관해 비난을 자초했다. 헤즈볼라 지원 세력인 이란과 시리아를 유인하거나 힘을 빼는 데도 실패했다. 헤즈볼라의 항전으로 이스라엘군의 진격 속도를 늦추는 데 성공해 이란과 시리아가 전면에 나설 필요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번 휴전으로 가장 많은 것을 얻는 나라는 단연 프랑스다.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중재자로 나서 유엔 결의를 이끌어낸 덕분에 국제적 발언권을 강화했으며 레바논에서는 기독교 세력의 후원자 입지를 더욱 굳혔다.

레바논 난민들은 '불안한 휴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15일 남부로 줄지어 귀향에 나섰다. 이날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의 전략 요충지인 마르자윤에서 철수했다. 1982~2000년 레바논 남부를 점령했을 때 지휘 통제부가 있던 곳이다. 이스라엘은 다음주까지 레바논 주둔 자국군의 철수가 끝날 것으로 본다. 레바논 남부 이스라엘군 주둔 지역에는 이날 로켓포 10여 발이 떨어졌으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 레바논 정부군과 유엔 평화유지군은 이르면 다음주 남부 완충 지대에 배치될 것이라고 AFP통신이 전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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