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화 애국주의'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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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국이 외국산 드라마와 만화영화에 대한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다. 정부 주도로 구체적이면서 엄격한 제한 규정을 도입함으로써 자국 문화상품을 보호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일부에서는 '문화 애국주의'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TV와 영화산업 정책 등을 총괄하는 중국 광전총국(廣電總局)은 12일 새로운 규정을 발표했다. 다음달부터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이른바 '골든 아워'에는 외국산 만화영화를 방영할 수 없다는 것이 골자다. 중국산이나 방송사 자체 제작 만화영화는 방영이 가능하다는 점도 함께 명시했다. 이 지침은 이미 각 지역의 방송사에 하달됐다고 베이징청년보(北京靑年報)는 보도했다. 중국은 전에도 자국 만화영화를 살리기 위해 정책적으로 배려한 적이 있었다. 2000년 광전총국은 '국산 만화영화 방영 비율이 60% 이상 돼야 한다'고 발표했었다. 새 규정은 중국산 보호 원칙을 더욱 강화한 것이다. 중국산 만화영화는 대체로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일부 우수한 작품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완성도가 앞선 일본산 만화영화가 중국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베이징청년보는 "중국의 TV 방송사들은 국산 만화영화 60% 이상 방영 규정에도 불구하고 외국산 만화영화를 주요 시간대에 틀고 있다"며 "가장 큰 이유는 중국산 만화영화로는 시청률을 높일 수 없고, 그 결과 광고수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광전총국은 두 달 전 올해 한국산 드라마 수입 편수를 4편으로 제한했다. 보통 10편을 넘던 예년의 수준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류(韓流)를 경계하자는 당국자들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규정으로 외국산 만화영화는 오후 8시 이후에만 방영이 가능하다. 이는 대장금을 비롯한 대표적인 한류 드라마를 오후 10시 이후에만 방영하도록 한 조치와 유사하다.

아울러 베이징시는 외국 위성방송에 대한 수신 행위도 대폭 규제할 방침이다. 시 당국은 관련 장비를 제작.판매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위성방송과 수신설비 관리 규정'도 이번에 발표했다. 인터넷에 대한 검열 조치 강화와 함께 중국이 전반적으로 외국 문화상품에 대한 경계를 부쩍 강화하는 분위기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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