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블레어·이스라엘 '호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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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0일 영국의 항공기 테러 음모 적발 직후 "우리는 미국을 파괴하려는 이슬람 파시스트들과 전쟁 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9.11 테러 이후 자신이 수행해 온 '테러와의 전쟁'의 정당성을 재확인한 것이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아직 공식적인 언급은 피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를 하락하는 자신의 인기도 만회를 위해 반전의 기회로 삼을 전망이다. 카이로 아메리칸대학의 이니드 힐 정치학과 교수는 "그동안 레바논 사태에 대한 늑장 대응으로 일관해 온 미국과 영국에 이번 사건은 숨통을 터주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항공기 테러 음모 적발의 직접적인 수혜자는 이스라엘이다. 미국이 '테러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는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세력 헤즈볼라와 전쟁 중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영국 테러 음모 적발을 계기로 두 달째에 들어선 레바논 공격의 고삐를 한층 더 조일 수 있는 명분을 확보했다.

미국 주도의 서방과 대치하고 있는 알카에다 등 과격세력은 비록 실패는 했지만 서방 내 테러 공포증을 확산시키는 데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다. 알카에다는 이번에 자신들이 9.11보다 큰 초대형 테러를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 빈라덴은 '숨은 승자'다.

반면 헤즈볼라는 정치적으로 패자가 됐다. 이스라엘의 공세는 더욱 강화될 것이고 국제사회의 헤즈볼라 무장해제 요구도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동 내 온건국가와 서방에 거주하는 무슬림들도 이번 테러로 다시 의혹의 눈길을 받아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이슬람=테러리즘'이라는 인식이 서방 내 더욱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최대 피해자는 이라크.레바논.아프가니스탄 같은 전쟁 지역의 민간인들이다. 과격세력의 테러와 이에 대한 서방의 보복으로 이미 9.11 이후 수만 명의 민간인이 애꿎게 목숨을 잃었다. 이 때문에 중동권 일부 언론은 이번 테러 음모와 관련, '서방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알마나르 방송은 "서방이 다시 이스라엘 구하기에 나섰다"며 이번 사건이 조작됐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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