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라병원, 파업 가담자 전원 해고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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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한라병원 노조의 장기간 파업에 사용자측이 파업 가담자 전원 해고라는 강수로 대응하면서 노사 양측 모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이미 건너버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83년 10월 12과 150병상으로 개원한 의료법인 한라병원은 설립자 2세 대물림 경영체제로 이어지면서 현재 21과 405병상으로 확대됐고 도내에서는 유일하게 장기이식, 뇌사판정, 인공수태 시술 등의 의료기관으로 지정받은 도내 최대, 최첨단 3차 진료기관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90년대 초부터 매끄럽지 못한 노사관계 등으로 지역 사회에서 종종 구설수에 올랐고 23일 현재 진행중인 장기간 파업과 노조원 전원 해고 등 극한 대립으로 눈총을 받는 병원으로 전락했다.

파업 이전에 비해 응급환자는 50%, 총환자 기준으로 60%가 감소했다는 병원 관계자의 설명처럼 도민들의 한라병원 기피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97년 단체교섭을 끝으로 유명무실해진 노조를 복원, 정비한 것은 지난 2000년 8월.

재건된 노조는 지난 해 단체협약을 체결한데 이어 올들어 지난 3월부터 본격적인 근로조건 개선 시도에 나섰다.

노조가 사실상 와해된 뒤 98년부터 지금까지 임금이 완전 동결됐고 근로조건이 계속 열악해졌다는 것이 노조측의 주장이다.

노조측 자료에 따르면 한라병원 간호사의 초임은 79만6천280원으로 전국 58개 병원의 평균 초임 136만810원에 비해 58.5% 수준에 불과하다.

병상수(환자수) 대비 간호사수도 2.78대1로 256병상의 제주대병원 1.79대1보다 높고 야간근무 때는 간호사 2명이 환자 72명을 전담하는 실정이라고 노조측은 밝혔다.

병원측은 또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하지 아니한다'는 단체협약을 무시하고 정규직이 퇴직한 모든 자리를 1년 단위 연봉계약직으로 신규채용하고 있다.

임금체계만 연봉제인 다른 사업장과는 달리 고용불안 요소가 강하고 실제로 이번 장기파업 기간에 17명의 노조원이 계약기간 만료에 따른 병원측의 일방적 계약해지로 사실상 해고됐다.

지난 3월 22일부터 진행된 노사 교섭 초기 18개 요구사항을 제시했던 노조측도 파업 직전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용안정' 장치 만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병원측은 시종일관 인사.경영권 침해로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 제주지방노동위의 조정안도 거부하고 결국 징계위원회를 거쳐 22일 새벽 파업가담 노조원 108명 전원 해고라는 강수로 대응했다.

이에 앞서 병원측은 노동위의 중재회부 결정과 중재재정으로 쟁의행위를 할 수 없음에도 노조가 불법파업을 강행,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며 업무방해 혐의 고소.고발,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으로 노조를 압박했다.

병원측은 제주도내 시민단체의 교섭 촉구와 징계 철회 요구, 종교계 대표의 면담 요청,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도 일체 응하지 않으며 정해진 수순을 밟고 있는 형국이다.

22일 저녁에는 경비용역업체 직원들을 동원, 노조원들을 한 쪽으로 격리시킨 가운데 농성장 집기와 벽보 등을 모두 철거했고 병원 입구에서는 시민단체 회원과 대학생 등 200여명이 밤샘 지원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경비용역업체와 노조측의 비공식 합의로 노조측은 23일 오전 1층 로비 농성장을 다시 확보하고 노조사무실 출입이 허용됐다.

노사 양측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무리한 실력행사 등 `선공'을 자제하면서 명분 싸움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어느 한 쪽이 더 이상의 `악수'를 두지 않는 한 노동위의 `부당해고 등 구제신청' 처리 시한인 앞으로 2∼3개월간 노사 대립은 현 상태로 지속될 전망이다. (제주=연합뉴스) 홍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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