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간 아프리카서 의료봉사 장기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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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2년만 가서 고생하자고 가족들을 설득했는데 벌써 23년이 흘렀습니다. "

1977년 겨울 가족들과 함께 생면부지의 땅 아프리카로 향한 장기순(張琪淳.65) 씨. 張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남은 생애를 아프리카 환자들과 함께 지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한국국제협력단(총재 閔形基) 의사단 소속으로 튀니지아에서 10년, 모리타니아에서 13년간 의료봉사 활동을 한 그가 지난달 27일 23년간의 아프리카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왔다.

십년째 충남 금산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던 張씨가 인생 행로를 바꾸게 된 것은 우연히 의사협회보를 본 뒤부터. ´아프리카에서 봉사할 산부인과 의사를 구한다´ 는 외무부의 공고를 보면서 ´이것이 내가 갈 길´ 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병원도 잘되고 아이들도 중학교에 들어가 주위의 반대가 심했지만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오자´ 며 가족을 끝내 설득했죠. 계약기간인 2년만 근무하다 오는 것으로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
첫 발령지는 아프리카 북부의 지중해에 인접한 튀니지아. ´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튀니지아는 아프리카 대륙의 선진국에 속했지만 의료 분야에선 후진국 수준이었다.

스팍스 대학병원 산부인과 의사로 자리잡은 張씨는 곧 이동시술반 차량을 다섯팀으로 꾸렸다. 이후 시골 구석구석을 돌며 하루 20건씩 무료 불임수술을 했다. 그후 10년간 총 7천건의 복강경 시술을 한 결과 한 가구당 7명의 자녀수가 평균 3명으로 줄어드는 성과를 냈다.

한국에 있는 의사 월급의 50% 수준 밖에 안됐지만 張씨는 그때 만큼 보람있고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아내가 고국으로 돌아가자고 몇번이나 졸랐지만 계속 남아있었던 것도 한참 진행중이던 가족계획운동을 중도에 그만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튀니지아의 가족계획이 점차 자리를 잡을 무렵인 지난 86년 張씨는 사하라사막 서부에 있는 신생국 모리타니아로 자리를 옮겼다. 모리타니아는 튀니지아와는 달리 가난한 국가인데다 일부다처제의 영향으로 1가구당 8~15명의 자녀가 있었다.

"장관을 찾아가 산아제한 운동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더니 풍습.전통 운운하며 안된다고 하더군요. 안되겠다 싶어 한국에 시술기구를 부탁해서 시범을 보였더니 나중에 지원을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

張씨는 이와 함께 모리타니아에 살고 있던 한국인 선원 2천여명을 공휴일과 주말을 이용, 10년간 무료 진료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3일 수교훈장 창의장을 수여받은 張씨는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야 한다.

후임의사가 3월 1일부로 오기로 했다가 갑자기 오지 않겠다고 통보를 했기 때문. 빈자리를 지키러 가야한다는 張씨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도 아주 행복하다는 걸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며 아쉬워했다.

글.사진〓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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