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사태 아니더라도 조자양 숙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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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자오쯔양(조자양)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실각은 당내 보수파원로들에 의해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돼왔던 것이며, 지난봄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시위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는 다른 이유로 당 총서기 직에서 밀려났을 것이라고 천위즈 전 중국경제구조개혁 연구소장이 7일 르몽드지와의 회견에서 말했다.
조자양 전 총서기의 주요측근 가운데 한 명으로 천안문 사태직후 잠적했다가 최근 프랑스에 모습을 드러낸 천 전 소장은 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천안문사대의 최종책임은 당내80대 보수파 원로인 천윈(진운) 당 중앙위고문위원회 주임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천안문 사태이후 반혁명분자 체포령을 피해 외국으로 망명해온 중국 관료 중 가장 고위직에 속하는 천 전 소장은 특히 강경파의 대표적 인물로 지목되고 있는 리펑(이붕) 수상은 실제로는 부수상인 야오이린(요의림) 당정치국 상무위원에 의해 조종되고 있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고 말해 주목되고 있다.
조자양 전 총서기의 개혁정책에 실질적인 자문역할을 맡았던 천 전 소장의 이 같은 발언은 천안문사태를 전후한 중국 권부 내의 암투를 이해하는데 새로운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다음은 천 전 소장의 회견요지.
『지난봄 천안문 광장의 학생시위는 조자양 총서기를 퇴임시키기 위한 하나의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50년대 소련에서 공부했었고, 그 후 계속해서 특권을 누려온 당내 보수파원로들은 작년가을 이미 덩샤오핑 (등소평) 에게 조의해임을 요구했었다.
설사 지난봄 학생시위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는 다른 이유로 총서기 직에서 밀려났을 것이다.
당내 보수파원로들은 지난82년 이후 계속해서 등소평의 개혁정책에 조직적으로 맞서 왔었고, 이번 기회에 10년 간의 개혁정책에 종지부를 찍도록 할 속셈이었다.
조자양 총서기는 스탈린 식의 계획경제가 중국에는 맞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시장경제를 주강해 왔다. 그는 또 당과 정부의 권력분리를 희망했었다.
그러나 보수파원로들은 계획경제를 지지해왔고, 당·정 권력 분리는 자신들의 권력을 위태롭게 한다고 믿고있었다.
이붕 수상은 조자양 총서기가 북한방문을 위해 자리를 비운 틈을 이용, 지난4월24일 당내보수파모임을 열어 몇 주전부터 미리 준비해온 보고서에 따라 조총서기의 태도를 비판하고 학생들의 요구를 불순한 책동으로 몰아붙였다.
또 당시 보수파들은 등소평에게 몰려가 학생운동을 진압하고 조총서기를 퇴임시키라고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당초 학생들의 태도는 과격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생들이 더 이상의 시위를 그만두려고 할 때마다 이붕 수상은 그들을 자극했다.
특히 5월4일 조총서기의 담화발표 이후에는 거의 모든 학생들이 학교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그 직후 이붕 수상은 각 대학책임자들을 불러모아 학생시위가 공공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불법적 행동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했다. 곧이어 학생들은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수업거부와 단식농성으로 이어진 것이다.
일부 극소수 권력자들에 의한 일종의 쿠데타라고도 할 수 있는 천안문광장 대 참극의 최고책임이 이붕 수상에게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붕 수상이 강경 보수파의 최 전면에 나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상 그는 경제를 쥐고있는 요의림 부수상에 의해 조종되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천안문광장 참극의 주모자는 과거 당 정치국원이었고 당 원로인 리셴넨(이선념) 정치협상 회의주석(79)과 진운 당 중앙위 고문위원회주임(83) 등 두 사람이며, 특히 최종책임은 80대 원로인 진주임에게 있다.
등소평은 여러 가지로 모순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가 경제개혁 및 정치개혁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혁으로 당의 지도적 위치가 손상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하고있다.
그의 뒤에는 과거의 원로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로서 그들과 맞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럴 경우 자기 자신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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