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따로 휴가를 간 적이 없어요. 집 앞이 바로 바다였거든요. 소래 포구 갯벌에서 친구들과 매일 뛰어 놀았죠. 산속에 저희 집만 덩그러니 한 채 있었는데 얼마나 외진 곳이었으면 저희 집 앞마당에서 약수가 다 나왔다니까요. 동네 사람들도 저희 집으로 약수 뜨러 왔더랬죠."
얼핏 들으면 산 좋고, 물 맑은 곳의 그림 같은 별장에서 지낸 듯 보이지만 어릴 적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어려워진 바다의 유년 시절은 20여 년 전 경기도 시흥의 산골 어귀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신도시로 몰라보게 발전했지만 그때는 길에 소가 엎어지기라도 하면 하루종일 동네에 차가 못 들어올 정도로 전혀 개발이 안 된 곳이었어요. 심지어 학교에 가기 위해선 산을 타고 넘어야 했죠. 오는 길엔 칡뿌리도 캐 먹고, 손을 뻗어 밤도 따 먹고 철철이 복숭아.배.수박.딸기까지 찾아다니느라 하루 종일 심심할 틈이 없었어요."
그러나 해가 일찍 떨어지기라도 하는 겨울이 오면 인적은 고사하고 불빛 한 점 없는 산을 어린 바다 혼자 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포영화처럼 이름 모를 묘지도 두어 곳을 지나야 하는데 그때 두려움을 쫓기 위해 터득한 바다의 비법은 바로 이것!
"그럴 때마다 노래를 불렀어요. 으스스한 바람 소리, 한밤중의 새 우는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제가 더 크게 노래를 불러서 무서움을 이겨냈죠.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논두렁이나 산속에서 본의 아니게 날마다 노래 연습을 한 덕분에 지금 가수가 되었나 봐요."
그 당시 어려운 살림에 더운물 목욕은 꿈도 못 꾸었다는 바다는 살얼음 동동 뜬 약수로 한겨울에도 냉수 마찰을 해 지금의 탱탱한 피부를 갖게 됐다고 시원스레 웃었다. 그녀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바다에 온 것처럼 마음이 탁 트인다. 지금 그녀는 생애 첫 라이브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여름 나의 휴가는 바다처럼 깊고 푸른 그녀의 노래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이현주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