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의소곤소곤연예가] 바닷가 묘지 오가며 목소리 틔운 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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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국과 프랑스전이 있던 17일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응원을 다녀온 친구가 열변을 토하며 하는 말은 역사적인 동점골도, 붉은 악마의 힘찬 응원도 아닌 바로 가수 '바다'에 대해서였다. 어쩜 그 자그맣고 가느다란 체구에서 6만여 명이 넘는 관중을 압도하는 목소리가 나오는지 너무도 신기하고 시원해서 피서(避暑)가 따로 없었다고. 그러고 보니 여름 휴가지 1순위로 손꼽히는 바다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에겐 어떤 휴가의 추억이 있을까?

"어릴 때부터 따로 휴가를 간 적이 없어요. 집 앞이 바로 바다였거든요. 소래 포구 갯벌에서 친구들과 매일 뛰어 놀았죠. 산속에 저희 집만 덩그러니 한 채 있었는데 얼마나 외진 곳이었으면 저희 집 앞마당에서 약수가 다 나왔다니까요. 동네 사람들도 저희 집으로 약수 뜨러 왔더랬죠."

얼핏 들으면 산 좋고, 물 맑은 곳의 그림 같은 별장에서 지낸 듯 보이지만 어릴 적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어려워진 바다의 유년 시절은 20여 년 전 경기도 시흥의 산골 어귀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신도시로 몰라보게 발전했지만 그때는 길에 소가 엎어지기라도 하면 하루종일 동네에 차가 못 들어올 정도로 전혀 개발이 안 된 곳이었어요. 심지어 학교에 가기 위해선 산을 타고 넘어야 했죠. 오는 길엔 칡뿌리도 캐 먹고, 손을 뻗어 밤도 따 먹고 철철이 복숭아.배.수박.딸기까지 찾아다니느라 하루 종일 심심할 틈이 없었어요."

그러나 해가 일찍 떨어지기라도 하는 겨울이 오면 인적은 고사하고 불빛 한 점 없는 산을 어린 바다 혼자 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포영화처럼 이름 모를 묘지도 두어 곳을 지나야 하는데 그때 두려움을 쫓기 위해 터득한 바다의 비법은 바로 이것!

"그럴 때마다 노래를 불렀어요. 으스스한 바람 소리, 한밤중의 새 우는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제가 더 크게 노래를 불러서 무서움을 이겨냈죠.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논두렁이나 산속에서 본의 아니게 날마다 노래 연습을 한 덕분에 지금 가수가 되었나 봐요."

그 당시 어려운 살림에 더운물 목욕은 꿈도 못 꾸었다는 바다는 살얼음 동동 뜬 약수로 한겨울에도 냉수 마찰을 해 지금의 탱탱한 피부를 갖게 됐다고 시원스레 웃었다. 그녀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바다에 온 것처럼 마음이 탁 트인다. 지금 그녀는 생애 첫 라이브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여름 나의 휴가는 바다처럼 깊고 푸른 그녀의 노래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이현주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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