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제 능력으론 안 됩니다"…10년 후 보장 없는 GM과 합의

중앙일보

입력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연합뉴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연합뉴스>

 “그걸 문서로 보장받는 건 제 능력으로 안 됩니다.”

10년 후 한국GM의 미래에 대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고백이다. 일단 시간은 벌었지만, 10년 뒤 GM의 생산시설 철수 가능성까지는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18일 이 회장이 한국GM과 합의 사항을 설명하기 위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한국GM의 2대 주주인 산은은 이날 GM과 ‘주주간 분쟁해결 합의서’를 체결했다. 산은은 한국GM의 이사회와 임시 주주총회에선 법인 분리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동안 노동조합 편에 서서 한국GM의 법인 분리에 제동을 걸었던 이 회장으로선 뜻밖의 행보다.

합의서의 문구 중 ‘노력한다’는 표현은 법적 구속력이 없지 않으냐는 기자들의 지적이 나왔다. 이 회장은 “10년 후 자동차 산업이 어떻게 될지, 전 세계산업 구도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10년 후 보장을 구속력 있게 문서로 받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이날 산은과 합의로 한국GM이 연구개발(R&D) 조직을 떼어내 별도 법인으로 설립하는 계획은 탄력을 받게 됐다. 산은은 오는 26일 한국GM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4045억원의 추가 자금도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GM 노동조합은 법인 분리가 자동차 생산공장 폐쇄를 위한 사전 수순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진통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 회장은 “신설 R&D 법인의 연구용역이 활성화되면 향후 생산법인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종합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R&D 법인 신설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산은이 법인 분리에 찬성하는 대신 GM은 신설 법인을 글로벌 차원에서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의 연구개발 거점으로 최소 10년간 유지하기로 했다. GM이 ‘10년 이상의 지속 가능성’과 ‘추가 R&D 물량 확보’를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도 합의서에 담겼다.

이 회장은 “GM의 요청으로 구체적인 수치를 밝힐 수 없지만, 부품 공급량이 증가하고 생산유발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 모델을 개발할 때 부품업체가 옆에 있으면 개발단계부터 협의해 유리한 조건으로 공급할 가능성이 크다”며 “부품업체가 엔지니어를 추가로 고용하는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산은과 협상에 소극적이었던 GM은 지난달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나오면서 태도가 변했다. 서울고법은 “한국GM 주주총회에서 ‘R&D 법인 분할계획 승인’ 결의의 집행을 정지해 달라”며 산은이 낸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

산은은 GM에게서 법인분리 사업계획서를 제출받아 외부 용역기관에 검토를 맡겼다. 18일 산은이 받은 검토 보고서는 생산법인과 R&D법인 모두 영업이익이 증가하고, 부채비율도 낮아져 경영 안정성이 강화되는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산은이 법인분리 관련 계약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본안소송의 승소 가능성이 작다는 점도 고려됐다.

법인분리 관련 절차가 마무리되면 법원에 낸 가처분 신청도 취하할 계획이라고 이 회장은 밝혔다.

이 회장은 “산업은행은 노조 편도 아니고 GM 본사 편도 아닌 채로 한국GM 정상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의 관점에서 판단했다”며 “신설 R&D법인과 생산법인의 양쪽에서 각각 2대 주주의 권리를 유지하고 회사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설명했다. 한국GM 노조에 대해 이 회장은 “노조에서도 심도 있게 검토한다면 잠재적으로 이익이 될 부분이 많기 때문에 반대만 하지 말고 진지하게 협의하면 좋겠다”며 “이 문제는 대화와 협의로 풀어야지 투쟁으로 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정완ㆍ정용환 기자 jwjo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