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의 칼자루」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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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간평가를 둘러싼 최근의 정국 혼미는 일반 국민들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중간평가를 받겠다는 노 대통령의 선거공약을 공약대로 실천하면 그뿐이지 그걸 두고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들은 또 야당들대로 왜 그렇게 말이 많고, 전의 말과 후의 말이 다른지 국외자들로서는 어리둥절해진다.
중간평가를 두고 국민투표를 하느니 마느니, 신임연계를 하느니 않느니 하며 갈팡질팡하던 여권은 최근들어 신임국민투표로 방침을 굳히고 그 시기도 조기실시 쪽으로 결정한 듯이 보여 어느 정도 내부 의사를 정리한 것 같다.
노 대통령이 『언제든지 실시할 수 있게 준비하라』고 내각과 민정당에 지시한 것으로 보아 조기 국민투표를 결심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여권이 오랜만에 이 문제에 대해 결심을 굳힌 듯 하자 이번에는 야권에서 갈팡질팡 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24일3야당총재회담에서는 중간평가가 노 대통령의 대 국민 약속임을 들어 정치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던 야당들이 이번에는 대여 막후절충을 벌일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는가하면 중간평가는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그렇게 요구해놓고도 이제 와서 실시 연기·보류론도 없지 않은 모양이다.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하면서도3야당의 주장은 지자제선거 후 실시, 5공청산후 실시, 불필요론 등으로 타당공약의 이행문제를 놓고 갖가지 주문들을 하고 있다. 가령 5공청산후 실시라면 5공청산은 언제 끝나며 이젠 됐다고 여야간 합의는 가능한 것인가.
그런가 하면 여권에서는 신임 국민투표를 한다고 하면서도 국민 투표에 부칠 사안에 대해서는 아직 말이 없는 가운데 국민투표후의 정계개편론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4당 동반 신임평가란 말은 들어갔지만 여소야대의 원내 세력구조를 바꿔 보려는 변법을 공약에 얹으려는 충동이 계속 남아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주고 있다.
국민투표 결과가 여당에 크게 유리할 경우 그 정치력을 바탕으로 정계개편을 추진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국민투표결과로 국회를 해산하거나 여소야대를 깰 합법적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인데도 마치 야당들을 협박이라도 하는 것처럼 정계개편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가 보기에는 중간평가를 둘러싼 여야의 이런 일관성 없는 자세나 그로 인한 정국표류가 결코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고 믿는다. 원칙적으르 말해 중간평가라는 한 선거공약이 이제 와서 여야 어느 쪽의 정략적 「칼자루」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공약을 공약대로 정직하게 실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책임을 지라는 것이 소박한 국민의 요구가 아닌가 한다. 그렇다며 중간평가를 두고 때 이르게 집권경쟁이 첨예화하거나 공약의 변질로 정치적 횡재를 노리는 현상이 와서는 안될 것이다. 요컨대 여야 어느 쪽도 중간평가에 대해 「과욕」을 부리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물론 중간평가가 불신임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고, 그에 따라 불가피하게 벌어질 집권경쟁 국면에 대비하는 것은 정당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또 야당으로서는 국민투표가 실시되면 불신임 운동을 벌여 집권기회를 노릴 것도 예견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때 가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더라도 여야가 지금부터 당략에 따라 갈팡질팡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권을 방어하고 집권을 추구하는데도 나름대로의 명분과 일관성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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