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로 변한 옛「영화의 상징」|대통령취임후 새단장|허찔린 경찰 경비강화|주민들 "꼭 불태워야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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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대학생들의 기습으로 불타 검은 서까래의 흉한 모습을 드러낸 전두환전대통령의 생가는 마치 권좌에서 물러난후 5공비리 베일이 벗겨지며 지탄의 대상이 된 전씨와 전씨일가의 오늘을 비추는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작은 민속촌 같았던 본채와 행랑채의 초가지붕이 불에 타 검은 재로 덮이고 타다 남은 볏짚 이엉이 어지럽게 널려진채 화기(화기)를 내뿜어 더욱 그렇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말라는 말이 있지않습니까. 생가까지 불태워야할 이유가 꼭 있을까요.』
생가마을 주민들의 안타까와하는 표정과는 달리 타다 남은 잿더미는 권세와 영화도 결국 「한줌의재」일 뿐이라는 교훈적 의미를 묻고 있는듯 했다.
경비에 허를 찔린 경찰은 생가와 묘역에 각각 12명씩의 병력을 배치, 경비를 강화하고 있어 삼엄한 분위기마저 감돌고 있다.

<전두환씨 생가>
경남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257 전두환대통령의 생가는 대지 2백20평에 3칸짜리 본채(10평)와 행랑채11평), 그리고 헛간(3평)인 전형척인 초가집.
게다가 집주위에 기와를 얹은 시엔트돌담으로 마치드라마 세트처럼 단장해 놓았었다.
전전대통령이 태어난 이집은 지은지 50년이 넘은 헌집이었으나 전씨가족이 대구로 이사간후 친척 전맹환씨(72)등 소유로 돼있던 것을 전씨가 대통령취임후인 83년11월 합천군이 사들여 원형을 보존, 새로 보수해 「작은 민속촌」으로 한때 관광객들의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전씨가 대통령에서 물러난후 자물쇠로 잠근채 굳게 닫혀있었다.

<대학생기습>
이번사건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이었다. 광주학살 부정비리관련자 처단을 위한 대구지역 애국학생투쟁연합회산하 학생 애국결사대를 조직한 경북대생 6명은 각자 임무를 분담, 현장답사까지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지난7일 오후8시쯤 경북대총학생회 사무실에서 원성희군(전·이 구속수사 대구지역 결사대장)의 주재로 영남대총학생회 기획부장 남태우군(22·경영과3), 계명대 조통특위위원장 이영희군(23·국민윤리4)등 3명이 만나 5공비리척결활성화를 위해 생가를 불태울것을 결의했다.
이어 10일오후2시쯤에는 이기수이 전씨생가를 직접 답사, 교통편과 건물구조·경비실태를 확인한후 11일 기습했다.

<주민반응 및 복구>
생가가 있는 내천리 마을 주민은 총85가구. 이중 전씨문중은 16가구로 전전대통령생가는 8촌인 전민헌씨(58)가 관리를 맡아 청소등을 해오고있다.
내천리이장 백일태씨(44)는 『최근 5공비리와 관련, 전전대통령이 국민의 지탄을 받고있지만 마을주민들은 「대통령이 태어난 마읕」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왔는데…』라며 『생가를 불태운것은 마을주민들에게도 큰상처를 입힌것』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11일 마을총회를 열어 응급복구와 보존계획등에 관해 의논하고 밤새 초가이엉 1Om짜리 10개를 짜 12일 지붕을 씌우는 복구작업에 나섰다.
전씨생가 이웃 정호술씨(55)는 『호화주택도 아닌데 대학생들이 화염병을 던져 불태운것은 너무한것이 아니냐』며 『이날 바람만 강했더라면 불길이 이웃집들까지 번졌을것』이라고 놀란가슴을 진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합천=허상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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