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제 개헌 여권서 주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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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각제 개헌을 시사한 「마닐라 발언」으로 하한정국에 충격을 던졌던 윤길중 대표위원은 7일 밤늦게 귀국해서도 『후회 없다』고 자신의 소신을 주장했다. 그는 내각제·연정론에 대해 『욕심 없는 원로정치인이 개인적 소신을 밝힌 것 뿐』이라면서도 대통령 중심제를 「카리스마 조작정치」라고 강하게 비판해 당 내외 모두를 겨냥한 느낌을 줬다. 당직자들이 총 출동 하다시피 한 공항에서 서둘러 자택으로 돌아간 윤 대표는 뒤쫓아간 기자들에게 『자유롭다』면서 『나는 5·17을 지지하지 않았다』 『설 땅이 없으면 물러나야지』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무슨 뜻으로 내각제를 얘기했나.
『내 평생의 소신을 밝혔을 뿐이다』
-왜 그토록 내각제를 신봉하나.
『대통령중심제는 기본적으로 「카리스마 조작」의 정치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이 되고자하는 사람은 스스로 카리스마가 되고 또 주위에서 그렇게 만들기 위해 상황을 조작한다. 인기가 집중되는 사람만이 실세가 되고 진짜 민중을 위해 일하려는 사람은 관심도 못 받고…조작을 하다보니까 지역정당도 생기고….
물론 지난 개헌 때 야당과 국민들이 독재타도를 위해 직선제=대통령 중심제=민주주의라는 등식을 믿었던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이제는 평화적 정권교체도 되고 실상을 경험했으니 냉정하게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현 정국에서 내각제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급진학생들이나 혁명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우습다」고 할 것이다. 야당하는 사람들은 혁명적 입장도 아니면서 늘 엉거주춤하는가 하면 일단 뭐든지 반대부터 하고 본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체제는 엄연한 대통령 중심제면서도 사고는 의원내각제 식으로 한다. 대통령이 비토를 하면 펄펄 뛰고…. 야당이 연합해서 법안도 마음대로 통과시키고…. 야당도 지난번에 정권교체에 성공했더라면 대통령 중심제의 단점을 잘 알게되었을 것이다.
-사견이라고 하지만 여당의 대표위원 자격이 아닌가. 파장까지도 생각했을 텐데….
『평범한 개인으로 이런 말을 했다면 효과가 없을 것이다. 내 말에 후회는 없다. 언젠가 결실을 얻을 것이다.』
-여권 내부와 사전협의는 없었나.
『참으로 사람잡는 소리다.』
-민정당내에도 공감대가 있을 것 같은데….
『과거에 내각제를 주장했던 민정당이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여당 측에서 제안해서도 안되고 이니셔티브를 쥐어도 안 된다. 내가 얘기를 꺼내놓았으니 언론이 얘기도 해주고…. 야당이 이니셔티브를 쥐어야 할 것이다.
마치 내가 제안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니 불쾌해서 못 견디겠다.』
-당내에 「타이밍이 맞지 않다」고 비판하는 의견이 있는데.
『대표위원이 말했다고 해서 꼭 다 따르란 법이 있는가.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만약 야당도 반대하고, 여당도 반대하고, 모든 사람이 반대하면 설 땅이 없는 것이니 물러가야 하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 내각제 개헌이 언제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다음에 또 직선제가 돼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현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뽑았다는 것이 현실인 만큼 임기를 다 채우고 끝날 때쯤 개헌이 가능할 것이다.』
-연정과 중간평가에 대해서는.
『대 연정이든 소 연정이든 의원내각제를 전제로 하면 이제 생각해볼 시기다. 물론 상대가 있으니 얘기를 해봐야하겠지만 올림픽이 끝나고 연말쯤이 좋지 않겠는가. 하지만 구체적으로 김영삼씨나 김종필씨를 거론한 적은 없다. 중간평가와 내각제 개헌 연계운운도 말한 적 없다』
-김윤환 총무는 일본에서 야당과의 정책연합을 얘기했는데….
『작게 얘기하면 정책협의고 크게 얘기하면 연정이고…. 다 그런 것 아닌가.』

<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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