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에세이] 중국서 투자자는 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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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4월 4일 오전 8시30분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 즈위안(止園)호텔 주빈러우(主賓樓). 붉은 치파오(旗袍.치마 옆부분이 터진 중국 여인의 전통 의상) 차림의 안내원 20여 명이 투자가와 취재진을 엘리베이터 앞으로 솜씨 좋게 안내한다.

6층엔 산시성 정부가 마련한 동서(東西)합작투자협정 조인식을 위한 기자회견장이 마련돼 있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시절 시작한 서부 대개발을 위해 동부 지역의 자금과 기술을 서부로 끌어들이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기자회견을 겸한 투자설명회엔 2001년 중국 최초의 농업 선진기술구로 지정된 시안 근교 양링(楊凌)시범구의 멍젠궈(孟建國) 당위원회 부서기, 산시성 지적재산국의 웨이젠펑(魏建鋒) 국장 등 실무 책임자가 줄줄이 나섰다. 파워포인트까지 동원한 현대적 브리핑이다. 정부 관리가 아니라 비즈니스맨 같았다. 모든 순서가 잘 짜인 극본처럼 착착 진행됐다.

곧이어 투자 조인식. 동부 각 지역에서 온 10개 기업이 5억7660만 위안(약 693억원) 규모의 투자협정을 서부의 각 기업과 체결했다. 그런데 배치가 좀 특이했다. 산시성 고위 관리들은 단상 아래에 섰다. 투자가들은 단상 위에서 투자서에 서명했다.

장면 #2 같은 날 시안시 산시성 정부청사 내 황러우(黃樓). 천더밍(陳德銘) 산시성 성장이 합작 투자회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을 초청했다. 오후 2시 한 무리의 관리가 왁자지껄 웃으며 황러우로 들어온다. 이들 가운데 한 관리가 중앙 좌석에 앉았다. 외국 기자들은 그제야 이 사람이 성장인 걸 알았다. 기관장이 부하 관리들의 도열 속에 입장하던 중국 정부기관의 관례는 적어도 산시엔 없었다.

"중앙과 인민의 기대가 크다. 그러나 우리 서부의 힘만으론 어림없다." 천 성장은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서부 대개발을 도와 달라는 부탁이다.

"동부와 중부의 형제 성(省)들, 그리고 대만.홍콩.마카오의 동포가 서부로 와야 한다. 일본.한국 등 이웃의 도움도 꼭 필요하다."

그러고는 산시성이 최근 5년간 이뤄낸 업적과 앞으로의 청사진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러나 정작 인상적인 장면은 회견 이후였다. 천 성장은 자신을 둘러싼 기자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산시성을 잘 소개해 달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필요한 자료, 필요한 취재가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말도 남겼다. 산시성은 예부터 빈곤한 오지였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중국 특유의 상혼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중국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진세근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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