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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은행에 예금합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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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촛불은 아무리 많이 켜도 전등 한 개의 환함과 안정성을 못 따라갑니다. 촛불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면 그는 전기에서 빛을 끌어내 유리공에 모은다는 생각을 못했을 겁니다.

생각은 위대합니다. 새것을 만들고 수요를 창조합니다. 권력의 위세도 돈의 지배도 생각의 힘 앞에선 주춤합니다.

생각의 시대가 선거에도 닥쳤습니다. 생각 없이 던진 한 표가 어떤 고통을 가져오는지 사람들은 저마다의 체험을 했습니다. 무능한 리더십이 불러온 외환위기의 고통은 대표적인 국민 공통 경험이었지요. 이 공통 경험이 생각하는 선거의 씨앗이 됐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지요. 참여의 폭발시대입니다. 감성의 폭발에서 생각의 폭발로 진화하면 좋겠습니다. 지역과 주변과 생활의 실제적 변화가 일어날 때입니다.

◆ '매니페스토 공약은행' 바로가기 http://manifesto.joins.com/

'공약은행'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생각하는 선거시대의 신발명품이지요. 은행은 은행인데 돈을 예금하지 않습니다. 공약을 예금하는 은행이지요. 정책을 저금하고 생각을 저축합니다. 공약은행의 소재지는 인터넷 공간입니다. 중앙선관위.매니페스토추진본부.중앙일보의 홈페이지입니다. 공식 주소는 http://manifesto.joins.com이랍니다. 은행 문은 30일 엽니다.

이 공약은행엔 전국 유권자 누구든지 자기가 사는 234개 시.군.구 지역으로 들어와 정책예금을 할 수 있습니다. 5.31 지방선거를 겨냥해 만든 은행이기에 지역정책만 취급합니다.

예를 들어 분당의 율동공원에 주차하는 외지인 트럭 때문에 불편을 겪는 주민이 있습니까. 그러면 이 불편을 어떻게 해결할지 골똘히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나름대로 답(정책)이 나오면 그걸 공약은행 사이트의 성남지역에 올리세요.

공약은행에 올리는 정책은 원칙적으로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정책의 '목표'가 무엇인가. '우선순위'가 어느 정도인가. 그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밟아야 하는 '절차'는? 정책 완성의 '기한'은? 또 거기에 드는 '재원'은 얼마이며 어떻게 마련하나.

이렇게 '갖춘 공약'들이 예금되면 3만 명가량 되는 예비 후보자는 지역별로 공약을 대출해 갈 수 있습니다. 후보자들은 소속 정당의 당론에 따라, 정치철학이나 취향에 따라 자기 지역에 올라온 공약예금을 취사선택합니다.

공약은행은 유권자에겐 생활 선거의 기쁨을, 후보자에겐 정책 승부의 보람을 안겨줄 것입니다. 공약예금과 공약대출을 비교.분석.종합하면 전국 교통지도처럼 대한민국의 정책수요 지도도 그려지겠지요. 그리고 지방정부에 대한 정책예측성이 높아지고 평가기준도 자연스럽게 확립될 겁니다.

지난 20년은 바람의 선거였습니다. 민주화의 바람, 지역감정의 바람, 이미지와 감성의 바람이 차례로 선거판을 휩쓸었습니다. 이제 바람의 시대에서 정책의 시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생각의 시대로 전환해야 합니다. 유권자도 후보자처럼 공약을 만드는 시대가 돼야 합니다.

공약은 어떻게 만드느냐고요? 에디슨이 촛불 속에서 전등을 발명한 수순을 따르십시오. ①현재에서 불편을 느껴라. ②불편이 해소된 목표를 상상하라. 엉뚱해도 좋다. ③목표에 이르는 수단을 골똘히 생각하라. 생각이 대안을 낳는다. ④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따져라.

불편.목표.상상.수단.대안.비용을 의식하도록 노력하세요. 생각하는 국민이라야 나라가 삽니다.

전영기 정치부문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