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 개폐작업 서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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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13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반민주 악법 개폐논의가 한창이다. 민정당은 야당 측의 법 개정 요구에 대비해 70여 대상법률을 선정, 검토 작업에 들어갔고 야권 3당 또한 악법 개폐를 주요 정치현안으로 보고 각기 상설기구를 구성, 본격 활동 중이다.
사실 법의 개정과 폐지는 새 정부의 출범이나 국회 개원, 그리고 시대적 전환기라는 계기가 없더라도 이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충분히 인정되어왔다. 대한변협 등 법조계는 오래 전부터 국가 보안법이나 사회 안전법, 집시법 등이 위헌성을 내포한 위헌 입법으로 단정, 개정을 여러 차례 건의한바 있고 정부 일각에서도 어느 정도의 법 개정은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함께 해온 게 사실이다.
이처럼 법률의 개폐는 법의 권위와 존엄을 되살리고 민주화의 시대적 요청과 구시대를 청산한다는 의미에서도 조금도 유예할 수 없는 당면과제다. 여야와 정부가 다같이 민주화의 의지를 표명하면서 권위주의 정치 아래서 주로 정권안보를 위해 제정됐던 법률을 그대로 놓아둘 수 없는 처지다.
더구나 정부의 입장에서는 구시대에 만들어졌던 제반 법률을 정리하는 작업이 바로 구시대 정치를 실질적으로 청산하는 것을 의미하고 결별의 첫 걸음이라는 점에서 더욱 절실할 수도 있다.
문제는 개폐대상의 범위를 어느 선까지 하고 내용을 얼마만큼 손질하느냐 하는 원칙설정에 있는 것 같다.
원칙을 정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나 어떠한 경우에도 법 제정에 정당성이 없었거나 위헌적 법률 등은 과감히 개폐해야 할 것이다. 이는 사회 규범으로서의 법이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하고 법을 우습게 보는 법 경시풍조를 없애기 위해서나 제도적인 인권침해를 종식시킨다는 점에서도 그려하다.
지난 80년 국보위에서 마련한 이른바 개혁입법은 법 제정의 정당성부터가 의심되는 법률이다. 입법의 주체가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가 아니라는 점 외에도 입법의 목적이나 숨은 의도가 특정 정권의 존립과 유지에 밀접히 관계되었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찾기 힘들다. 입법과정이 변칙이고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법 제정의 목적이 다른데 있는 것이라면 그 법률은 정의롭고 공평하다는 국민적 동의를 얻어낼 수 없다.
특히 국가 보안법과 사회 안전법 등은 반정부 인사 등을 다루는데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왔고 헌법 정신과 법체계에 부합되는가의 논의도 있어왔던 법률이다. 집시법만 해도 사전 허가제나 다름없는 신고제를 둠으로써 위헌 법률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으며 경범죄와 경찰관 직무 집행법의 일부 조항은 기본권을 얼마든지 침해할 수 있는 요소가 들어있다. 이처럼 헌법정신과 시대정신에 어긋나는 법이나 독소 조항은 대폭 개폐하거나 남용의 소지가 있는 모호한 조항들은 보다 구체화하고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국가 모독 죄만 하더라도 국민이 정부를 비판하는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신설되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개편 작업은 이러한 반민주적이고 기본권 침해적 요소를 담은 법률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번 선거에서 보았듯이 지켜지지도 않는 유명무실한 법이나 시대에 뒤 처진 법 등도 대상에 넣어 깨끗이 정리해야 할 것이다.
법은 인간사회에서 야기되는 모든 현상의 질서유지를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그 법은 구성원 모두로부터의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 존중받지 못하는 법에 의한 강제된 질서나 안정은 본질적으로 무질서와 혼란과 다름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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