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e-메일 삭제" 요청만… 고객 정보 유출해 놓고도 수습조치 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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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국민은행은 15일 자사의 인터넷 복권 사이트에 가입한 회원 3000명에게 구매 권유를 위한 안내 e-메일을 보내면서 다른 회원 3만 명의 이름.주민등록번호.e-메일 주소가 담긴 파일을 첨부해 보냈다. e-메일을 받은 사람들은 인터넷 복권 사이트 회원이면서 최근 3개월간 복권을 사지 않은 고객이다. <본지 3월 16일자 14면>

국민은행은 이런 사실이 알려진 직후 "직원의 단순한 실수로 파일을 잘못 첨부했다"며 "즉각 조치에 나서 2800명의 e-메일을 회수했다"고 해명했다.

이 은행의 인터넷뱅킹 관계자는 또 "e-메일을 열어 본 200명의 고객에게 전화로 파일 삭제를 부탁했고, 전화 연결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겐 e-메일을 보내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e-메일을 받은 고객이 파일을 실제로 삭제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유출 정보가 악용될 가능성이 여전한 실정이다. 인터넷으로 순식간에 퍼지는 e-메일의 특성상 고객 정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재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신상정보 유출 가능성이 있는 17만 명의 인터넷 복권 회원이 불안해하고 있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정연수 개인정보보호팀장은 "주민번호 등 명의를 도용해 게임 사이트에 가입할 수도 있고, 광고성 쓰레기(스팸) 메일이 전송되면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복권을 사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만 회원 가입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명예와 관련한 문제도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관계자는 "파일이 악용된 사례가 발견되면 경찰 사이버수사대 등에 조사를 의뢰하는 방안 등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상정보 유출로 실제 피해자가 발생할 경우 보상 문제도 제기될 전망이다. 최근 파문이 컸던 온라인 게임 '리니지'와 관련해 명의를 도용당한 피해자 8500여 명은 15일 개발사인 엔씨소프트를 상대로 85억7000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원 허세원 은행검사2국장은 "고객 정보가 유출된 경위는 일단 단순 과실로 판단된다"며 "은행이 자체적으로 특별검사에 들어갔으니 그 결과를 보고 필요하면 조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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