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최의원 스스로 물러나는 게 바른 처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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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연희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지 20여 일이 지났다. 그동안 최 의원은 언론은 물론 소속 정당이었던 한나라당 당직자들과의 접촉도 일절 피했다. 사건이 공개된 직후 한나라당을 탈당한 것 이외에는 공식 입장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 의원의 이런 처신은 온당치 못하다. 잘못이 있으면 사과하고 스스로 입장을 밝히는 게 옳다.

최 의원이 숨죽이고 침묵한다고 해서 이 사건이 유야무야되지는 않는다. 피해 당사자가 결코 덮고 지나가지 않겠다는 입장인 데다가 여성단체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피해자가 소속된 동아일보사 동료들은 어제 최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더욱 기막힌 것은 그들이 고발장을 접수하면서 "최 의원이 피해자에게 어떤 형태의 사과도 하지 않았고 반성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한 대목이다. 이는 검찰 요직과 청와대 사정.민정비서관, 3선 의원에 제1야당의 사무총장 등 평생을 공인으로 지낸 사회 지도층으로서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더구나 여야의 정치 운명을 판가름할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이 사건은 정치 이슈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소나기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심정으로 외부 접촉을 피하고 있다면 어리석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민노당과 국민중심당 등 야 4당도 어제 국회에 최 의원에 대한 의원직 사퇴권고결의안을 제출했다. 의원들의 이기심 때문에 헌정 사상 의원직 사퇴결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한 사례가 없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최초로 의원직 사퇴안의 통과가 유력시된다. 여야 모두 한목소리로 최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결의안 자체가 법적 구속력은 없다. 그렇지만 이는 최 의원에게 사실상 정치적 사망이 선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여야 의원들에게 값싼 동정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 그러다가는 의원직뿐 아니라 마지막 정리할 때를 놓치게 된다. 최 의원은 공개석상에 나와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거취에 대해서도 밀려서 물러나기보다는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바른 처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