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논쟁 끝난 새만금, 최선의 이용방도 찾아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이번 판결은 2심 판결 이후 3개월도 채 안 걸렸다. 극히 이례적이다. 이 덕분에 사회적 갈등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됐다. 대법원이 지난달 초 갈등이 심한 사건을 신속히 재판하는 '중요 사건의 적시 처리 방안'을 도입해 새만금에 처음 적용했기 때문이다.

환경 지상주의는 이제 그만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업을 중단시킬 경우 우량 농지 확보 등 국가적.사회적 이익을 달성할 수 없게 되고 지금까지 막대한 비용을 투입한 데 따른 손해가 발생한다. 이를 감수하고 사업을 중단시킬 정도로 환경 피해가 클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공사를 중단함으로써 얻을 환경적 이익보다는 공익을 위한 개발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한 것이다. 환경이 헌법이 보호해야 할 가치이긴 하지만 개발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는 헌법상의 가치라는 원칙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환영할 만하다.

새만금 공사에는 지금까지 2조원가량의 돈이 들어갔고 33㎞의 방조제를 거의 다 짓고 2.7㎞만 남았는데 사업을 백지화하면 국가적 손실이 더 커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환경단체들이 "환경 훼손이라는 새만금 사업의 본질은 그대로 남아 있는 만큼 계속 싸우겠다"고 반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개발 논리만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문제이지만 대안 없는 환경 지상주의도 이제는 끝내야 한다. 새만금뿐 아니라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선정,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공사 등에서 이런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나지 않았는가.

대한상의는 새만금 공사가 2년여간 중단되면서 7500억원의 손실이 생겼다고 추정한다. 천성산 터널도 2조5000억원의 손해를 봤다고 한다. 사업이 늦어질수록 손실이 커지고 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따라서 소모적인 싸움은 여기에서 끝내야 한다.

다시는 정치 논리 개입 말아야

새만금은 비뚤어진 한국 정치가 낳은 사생아다. 전북 표를 노린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급조된 새만금 개발공약을 내놓았고 그 이후 환경문제가 불거지면서 꼬일 대로 꼬였다. 노무현 대통령도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새만금 사업에 부정적이었다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지지로 입장을 바꿨다.

사업이 지체되면서 당초 1조3000억원이라던 사업비가 눈 덩어리처럼 불어나 지금은 4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또 개발이냐 환경보호냐를 두고 싸우다가 끝내 조정이 안 돼 법원이 사업 진행 여부를 가리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단물을 빨아먹고 고통은 국민에게 전가된 셈이다.

새만금만 그런가. 이미 경제적 타당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판정난 호남고속철도 사업을 호남 표를 의식해 정치권에서 서두르고 있다. 현재 건설 중인 무안.울진 등 지방 공항도 정치 논리에서 출발하다 보니 수요를 부풀렸고 이 사실이 감사원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정부도 이번 판결이 마구잡이식 개발에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일부 대법관이 보충 의견에서 "새만금 사업의 정당성이 확보됐다고 만족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국가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며 환경친화적인 것인지를 꾸준히 검토해 반영하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

앞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지방자치단체.환경단체 등이 머리를 맞대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는 합리적인 개발 방안을 찾는 일이다. 쌀이 남아도는데 농지로만 개발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공업단지도 마찬가지다. 새만금 담수호가 제2의 시화호가 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동안의 혼란을 참고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힘을 모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