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피플] "사우디 증시 폭락 막아라" 개인 돈 2조6000억원 투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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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최대의 '큰손'으로 꼽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왈리드 빈 탈랄(51.사진) 왕자가 침체에 빠진 자국 증권시장을 살리기 위해 두툼한 지갑을 열었다. 그는 15일 대변인을 통해 "앞으로 몇 주 동안 개인 돈 100억 리얄(약 2조6000억원)을 사우디 증시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블룸버그 통신 등이 보도했다. 경제잡지 포브스의 최근 집계에 따르면 그는 세계 8위의 부호다. 그렇긴 해도 이 정도 거액은 웬만한 국가도 선뜻 동원하기 힘든 액수다.

알왈리드 왕자 측은 이에 대해 "이번 투자는 애국적 차원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왕가의 일원이지만 정치 권력의 중심에 서 있지는 않다. 이번 투자가 순전히 개인적 판단이란 뜻이다.

그는 이날 별도 성명에서 "대형 투자자들이 주가를 비정상적으로 높게 끌어올려 생긴 '거품'이 결국 터지고 말았다"며 최근의 폭락 사태를 개탄스러워 했다. 사우디의 TASI 주가지수는 고유가를 비롯한 호재를 업고 최근 몇 년간 계속 치솟았다. 그러다 지난달 25일 2만634포인트를 정점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14일엔 1만4900포인트까지 떨어졌다.

알왈리드의 행동에 사우디 정부도 뒷짐만 지고 있진 않았다. 그간 막아 왔던 외국인 주식 직접투자를 일부 허용해 외국에서 돈줄을 끌어오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방침과 알왈리드 왕자의 발표가 맞물려 주가지수는 15일 1만5606포인트로 반등했다.

알왈리드 왕자가 과연 나라를 위한다는 이유만으로 투자를 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있다. 쿠웨이트 국립은행의 알리 타키 투자사업부장은 "그가 주가의 반등 가능성을 보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알왈리드 왕자는 1979년 미국 멘로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투자 사업에 뛰어들었다. 은행에서 빌린 30만 달러(약 3억원)가 종자돈이 됐다. '아랍의 워런 버핏'이란 별명답게 천재적 수완을 발휘해 10년 뒤인 89년에는 재산이 14억 달러로 늘었다. 현재는 237억 달러쯤 된다고 한다. 번 만큼 많이 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매년 1억 달러 안팎을 자선.학술사업에 기부한다. 지난해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이슬람관 건축비용으로 2000만 달러를 내놨다. 미국 하버드.조지타운대의 이슬람 관련 교육 확대를 위해서도 각각 2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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