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이창호, 천적 최철한 벽 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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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근 세계무대에서 부진했던 최강자 이창호 9단(左)이 자신의 천적인 최철한 9단으로부터 국수위를 탈환하며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창호 9단이 8시간의 혈전 끝에 자신의 천적인 최철한 9단을 꺾고 49번째 '국수'위에 올랐다.

이 9단은 2대 2로 팽팽히 맞선 가운데 2일 한국기원에서 벌어진 도전 5번기 최종국에서 최철한 9단에게 125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며 종합전적 3대 2로 타이틀을 탈환했다.

이날의 승부는 종반이 백미였다. 불과 100여 수가 지나면서 바둑은 종반으로 접어들었다. 이때부터 미세하게 뒤져있던 백(최철한)의 격렬한 흔들기와 흑(이창호)의 수비가 처절하게 맞섰다.

이들의 최강 라이벌이라 할 이세돌 9단이 인터넷을 통해 이 판을 생중계하며 종반의 난해한 수수께끼들을 풀어나간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창호가 신흥 강자 최철한에게 국수 위를 빼앗긴 것은 2004년이다. 지난해에 이창호는 최철한에게 도전했으나 0대 3으로 완패했고 올해 세 번 만에 드디어 설욕에 성공했다.

이창호 9단의 이번 승리는 삼성화재배 결승전 패배, 농심신라면배 최종전 패배 등 세계무대에서의 잇따른 패배로 고전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더욱 값진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창호는 이번 국수전 전까지 최철한과 다섯 번 결승전을 치러 1승4패로 밀리고 있었다. 최철한이 이창호의 천적으로 떠오른 것은 당연했다.

이창호 대 최철한의 대결에서 또 하나 특이한 점은 흑번 필승이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도전기에서만 24번 대결하여 흑을 쥔 쪽이 19번을 이겼다. 이번 도전기에서도 4국까지 흑을 쥔 쪽이 모두 이겨 마지막 판에서 누가 흑을 잡느냐가 주목의 대상이었는데 돌을 새로 가려 이창호 9단이 흑을 잡았고 역시 승리했다.

두 기사의 대결에서 특별하게 흑승이 많은 것은 두터운 기풍 때문으로 해석된다.

두 기사 모두 실리에 민감하면서도 두텁게 판을 짜야 승률이 높은 데 백을 들고는 실리와 두터움 양쪽을 만족시키기가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이창호 9단은 국수 외에 왕위, 전자랜드배, 바둑왕, 10단까지 국내 5관왕이 됐고 최철한은 GS칼텍스배 하나만 남게 됐다.

한국기원이 발표한 3월 랭킹에선 이창호 1위, 최철한 2위, 이세돌 3위였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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