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釣魚臺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8월 27~29일 6자회담이 열렸던 중국 베이징(北京)의 댜오위타이(釣魚臺)는 중국이 귀빈을 접대할 때 사용하는 영빈관이다. 원래는 국가원수급 국빈들만 사용했지만 요즘은 장관급 관리, 중국을 방문하는 주요 기업인들도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

댜오위타이가 중국의 영빈관 형태로 운영되기 시작한 것은 1958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주년 경축행사 때부터다. 중국이 공산혁명을 이룩한 지 10년이 지나 나라의 기틀이 잡히자 각국의 정상이 앞다퉈 중국을 방문했는데 이들 외국 정상의 숙소가 마땅치 않아 댜오위타이를 개조해 국빈들과 수행원들의 숙소로 사용한 것이 시초다.

댜오위타이는 2층의 별장식 건물 19개동으로 구성됐으며, 총 객실수도 3백70여개에 달한다. 전체 면적은 42만㎡고 호수 면적만도 7만㎡나 된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처음엔 조형의 아름다움에, 그 다음엔 거대한 규모에 압도당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댜오위타이도 중국 외교부 산하의 기업 형태로 운영되면서 외국 정상들이 묶는 18호각과 외교연회가 주로 열리는 팡페이위안(芳菲苑)을 제외하곤 국빈관으로서의 의미가 많이 퇴색했다.

그러나 댜오위타이에 켜켜이 쌓여 있는 역사의 무게는 오늘날에도 대단해 중국을 방문하는 국빈 대부분은 아직도 이곳에서 각종 연회를 베푼다. 8백여년이 된 댜오위타이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황제가 3명 있다.

금나라의 장종(章宗), 명나라의 영락제, 청나라의 건륭제다. 특히 장종은 낚시를 즐겨 자주 이곳을 찾아 오늘날의 댜오위타이라는 명칭을 탄생시켰다. 청의 건륭제는 양원재.청로당.소벽헌.망해루 등 여러 건물을 증축하고 직접 현판도 썼다. 명의 영락제는 이곳을 즐겨 찾고 후일 친척들 별장으로 사용하게 했다.

댜오위타이와 한민족 간의 역사도 매우 깊다. 가깝게는 중국을 방문한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의 숙소가 바로 이곳 댜오위타이였고, 1992년 한.중 수교 합의가 이뤄졌던 장소가 팡페이위안이었다.

바로 이런 팡페이위안에서 중국 내 5대 요리 중 하나라는 댜오위타이 요리를 매개로 6개국 대표단이 고성과 웃음, 협상과 협박을 주고받았다는 6자회담 1라운드가 끝났다. 댜오위타이의 역사에 새롭게 덧붙여진 이번 회담은 향후 사가들에게 어떤 느낌과 향기를 주는 사건으로 기록될까.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