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보다 갈등으로 내달린 ‘240번 시내버스’

중앙일보

입력

11일 240번 버스에서 7세 아이 혼자 하차하고 아이 엄마가 내리지 못한 채 버스 기사가 문을 닫은 사건이 논란이 됐다. [연합뉴스]

11일 240번 버스에서 7세 아이 혼자 하차하고 아이 엄마가 내리지 못한 채 버스 기사가 문을 닫은 사건이 논란이 됐다. [연합뉴스]

240번 버스 사건 사건을 둘러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인터넷 글 보고 버스 기사에 '공분' #이틀 만에 '맘충 비하'로 변질 #"버스 승하차 문화가 바꾸는게 더 중요"

한 대형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 올라온 목격담이 시작이었다. 글쓴이는 11일 오후 6시 반쯤 건대 입구를 지나간 240번 버스에서 "5살도 안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내리고 뒷문이 닫혔고, 아기만 내리고 엄마는 못 내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주머니가 울부짖으며 아이만 내리고 본인이 못 내렸다고 문 열어달라고 하는데 (버스 기사가) 무시하고 그냥 건대 입구역으로 갔다. 다음 역에서 아주머니가 문 열리고 울며 뛰어나가는데 큰소리로 욕을 하며 뭐라 뭐라 하더라"고 덧붙였다.

목격자가 카페에 올린 글과 서울시 버스운송사업조합 게시판에 올라온 항의 글은 대형 카페와 SNS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다. 버스회사를 관리·감독하는 서울시는 12일 버스 회사에서 폐쇄회로(CC)TV 영상을 받아 분석하고 버스 기사 김모씨에게 경위서를 받는 등 진상조사에 나섰다.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240번 버스는 아이가 내린 정류장에서 16초 정차했다. 버스는 아이 엄마가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출발해 10m를 달리며 4차로에서 3차로로 차선을 바꿨다. 20초를 더 달리던 버스는 270m 떨어진 다음 정류장에서 아이 엄마를 내려줬다. 엄마 없이 혼자 정류장에 내린 아이는 목격자의 추측과 달리 우리 나이로 7세였다. 서울시는 버스회사와 운전기사가 규정을 위반한 것이 없어 처벌이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도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13일 유기죄 등이 적용될지 확인하기 위해 버스 기사를 불러 조사했으나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보고 조사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240번 버스 논란'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사과 게시물. [온라인 커뮤니티]

'240번 버스 논란'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사과 게시물. [온라인 커뮤니티]

처음 글을 올렸던 네티즌은 해당 글을 삭제하고 12일 밤 새로 글을 올렸다. 글쓴이는 "제대로 상황 판단을 못하고 기사님을 오해해서 너무나 죄송한 마음뿐"이라며 "기사님을 찾아뵙고 사과드리겠다"고 밝혔다.

버스 기사를 향했던 비난 여론은 이틀 만에 아이 엄마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이 엄마를 무고 혐의로 수사해라" "아이 엄마도 물의를 일으킨데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닌가" 등 분노를 담은 댓글이 관련 기사 밑에 달렸다. 사건을 알린 첫 글이 여성 회원이 대다수인 인터넷 카페였다는 점을 들며 "맘충이 문제였다"는 주장도 있다.

정작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사건이 특정인을 향한 비난에 그친 것이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3세 아들을 둔 아이 아빠 노모(31)씨는 "국민들이 언제든 쉽게 화낼 준비가 돼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사는 한국 사회가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이 둘을 키우는 류모(36·여)씨는 "욕설 논란 같은 것보다 한국 버스에 교통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게 문제 아닌가. 캐나다에 여행갔을 때 보니 장애인이나 노인이 타고 내릴 때도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운전기사나 승객들이나 다들 기다려주는 분위기였다"며 "아이 데리고 버스 타는 엄마들도 넓게 보면 교통약자인데 타고 내릴 시간을 보장해주는 분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3세 딸을 키우는 이모(31)씨도 "아이 엄마나 버스 기사가 욕을 먹을게 아니라 버스가 멈춘 후 하차 준비를 하고, 다 내리면 천천히 문닫는 버스 문화가 중요한게 아닌가" 되물었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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