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달랬지 구걸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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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밀린 임금 달라고 했지 구걸을 했습니까? 설사 동냥꾼이라도 쪽박은 안 깬다는데…』 19일 하오 서울 석곡동 신라 병원 306호실. 단돈 2만7천원의 밀린 봉급을 받으러 갔다가 『쥐꼬리만한 봉급 떼어 먹을까봐 밤중에 찾아와 난리냐』는 사장 방모씨(35·구속) 의 고함과 함께 「야구방망이 찜질」을 당한 김준원씨 (21·농업·충남 부여군 옥산면 홍연리 404) 의 하소연.
김씨는 왼쪽 어깨뼈가 부러지는 전치 6주의 중상이었다.
두 달 동안 5차례나 차일피일 급료 지불을 미루던 방씨가 『이번엔 꼭 주마』 고 약속한 날짜가 지난달 28일.
일부러 밤늦게 공장을 찾아간 김씨를 기다린 것은 그러나 『사장님 오늘 시골 내려가셨다』는 여직원의 전갈이었다.
김씨가 홧김에 욕설을 퍼붓는 순간 「시골갔다」던 방씨가 방문을 열고 뛰쳐 나와 야구 배트를 휘둘러 댔다.
『겨울철 농한기에 담배 값이라도 벌자고 상경했지요. 한달 봉급 13만원 중 가불 8만원과 4일 결근분 2만3천원을 뺀 2만7천원이 제가 받을 돈이었어요』
김씨는 「좌측 쇄골 골절상」을 입은 다음날 치료도 않은 채 울분을 삭이며 고향에 내러갔다가 어깨 통증이 심해지자 상경, 입원하면서 경찰에 고소장을 냈다.
『공장이 도산 지경입니다. 지금 종업원들 봉급도 제대로 감당 못해 안타까운데 퇴직한 사람이 부득부득 찾아와 욕설까지 해대는데 참을 수 없었지요』
종업원 15명을 데리고 점퍼·바지 등을 만드는 조그만 공장을 자영하는 사장 방씨는 거꾸로 『데리고 있던 사람에게 배신감마저 느꼈다』고 진술했다.
「전치6주」와 「가해자 구속」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노사 관계의 한 단면이었다. <노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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