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낳은 금세기 조각계의 대부 | 31일 타계한 조각가 헨리·무어의 예술과 생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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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달 31일 런던 자택에서 사망한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조각가 「헨리·무어」옹 (88) 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계미술계의 거장이었다.「헨리·무어」는 1898년 영국중부 요크셔의 캐슬포트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광부였고 「무어」는 그의 일곱번째 아들이었다. 할아버지 역시 광부여서 그도 건강한 체구, 참을성 많은 성격을 물려받았다.
l차대전이 일어나자 「무어」는 종군화가를 지망, 제15연대 문화봉사대원이 되었다. 프랑스전선에 참가, 독가스를 맡아 부상병으로 런던에 후송, 결전을 맞았다.
19년2월에 귀향한 「무어」는 리스미술대학에 입학했다. 여기서 데생을 배우고 조각교수인「코텔리」의 주목을 받았다. 「무어」 는 21년에 장학금을 받아 런던 왕립학교에 입학하였고, 24년에는 여행장학금을 받아 파리·로마·피렌체·라베나등을 견학했다.
29년 「라데츠키」와 결혼한 「무어」는 46년에야 딸을 낳았다. 50세 가까이되어서 얻은 자식이기에 그를 무척 사랑했고 이런 부성애와 가정환경이 「무어」작품에『모자상』을 자주 등장시켰다.
「무어」 는 28년·31년·46년까지 네차례 개인전을 열면서 근대조각의 활로를 찾았다.
그는 48년, 24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국제조각상을 받았다. 「무어」 의 작품에서 가장 특기할점은 「유기적 구성」 이라는 패상조각의 신국면을 펼친것이다.
그는 또 「환경과 조각」의 조화에 탁월한 성공을 거두어 수많은 기념조각을 제작했다.
「무어」는 『조각은 항상 첫눈에는 어떤 불분명함을 지녀야만 한다. 그래야만 그 조각이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생각할수 있는 힘을 길러줄수있다』고 말했다.
이는 감상자들을 보는 조각에서 생각하는 조각으로 끌어들인 그의 철학이다.
82년 「무어」 작품은 뉴욕경매장에서 1백26만5천달러(한화 약11억3천8백만원)에 팔려 생존작가의 것으론 최고가격을 기록했다.
「헨리·무어」 작품은 용인 호암미술관 야외조각장 (거상-손), 중앙일보뜰(착의의 모자와상), 힐튼호텔로비 (여인와상)에 전시돼 있다.
82년에 호암미술관, 83년에 현대화랑에서 전시회가 열려 한국인들도 조각·드로잉·판화작품등을 볼수 있었다.

<이규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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