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폭피해자」국내 초연|재미철학자 홍가이씨 작품, 9월 바탕골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히로시마에서 원폭피해를 당한 한국인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린 『나는 원폭피해자』(홍가이 작)가 9월「바탕골」소극장에서 국내초연 된다.
재미철학자인 홍씨가 쓴 이 작품은 영국 에딘버러에서 머머스극단에 의해 공연되는 등 외국공연은 있었으나 국내에서는 처음이다.
연출가 무세중씨는 『제작형편상 문제가 있으나 꼭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싶다』면서 출연극단을 찾고 있고 곧 연습에 들어갈 예정이다.
철학자가 쓴 『나는 원폭피해자』는 핵의 위험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인간모두가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이 문제에 깊이 개입하고 공감하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있다.
홍가이씨는 프린스턴대 강사로 있을 때 히로시마 원폭문제를 다룬 책들을 보면서 지금까지의 기록들이 그 기록을 보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는 하나 기록을 보고 난 후 그 사건과 나는 무관하다는 객관적 입장으로 돌아가게 만들고 있으며 오늘의 핵 문제에 접근하는데 있어 그 같은 객관화는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홍씨는 예술, 특히 무대와 관객이 호흡을 같이하는 연극을 통해 핵에의 객관화를 극복하려했다고 말했다.
『나는 원폭피해자』는 히로시마에서 원폭피해를 당한 한국인 일가가 해방 후 귀국하는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버지·어머니는 시름시름 죽어가고 딸1명은 식물인간이 된다. 원폭투하당시 히로시마교외의 집에 있었던 큰딸은 겉으로는 멀쩡하나 결혼 후 기형아를 낳는다.
이혼과 부군의 죽음이 따른다. 원폭피해 때문임을 안 그녀는 치료를 받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하다 잡힌다. 그녀는 매스컴에 호소하고 미국인이 세운 원폭피해자 병원으로 옮겨진다. 그 병원에서 그녀는 미국인들의 위선에 직면한다.
병원에서 의사들은 『당신은 꼭 원폭 때문에 기형아를 낳았다고 확증할 수 있지는 않다』면서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병원을 탈출한다. 그리고 미모를 밑천으로 유흥가로 빠져든다. 마담이 되고 마약밀수에도 개입한다.
어느 날 그녀는 병원에서 만난 미국인신부를 길거리에서 만나 그를 유혹한다. 그래서 다시 임신하고 또 기형아를 낳는다. 완전한 파멸이 그녀 앞에 온다. 그녀는 자살한다.
한국·일본·미국, 그 어느 곳에서도 구원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 가는 원폭피해자를 다루면서 홍씨는 줄거리의 전환이 있는 곳에 코러스·무용 등을 적절히 삽입하고 있다.
비극적 상황 속에 「희망의 코러스」를 삽입시키는 등으로 해서 극적 효과를 높이는 독일극작가 「브레히트」극의 효과를 얻어내고 있다.
『나는 원폭피해자』는 히로시마의 일을 통해 세계사를 살피려는 홍씨의 지적인 관찰이 번뜩이고 있다.
홍씨는 히로시마의 한국피해자들이 일본제국주의의 희생물, 나아가서는 2차 대전을 일으킨 대국들의 희생물로 보고있다.
히로시마의 한국인들은 일본인과 꼭 같이 그 자리에 있었어야할 사람들은 아니었으며 그들이 그곳에 있게된 것은 제국주의라는 역사의 희생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고 연극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홍씨가 더 강조하는 것은 이제 핵의 문제는 어느 한나라의 것이 아니라 전인류적인 것이며 인류모두가 이 문제에 개입되어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껴야한다는 점이다. <임재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