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사전계획...기점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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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학생들의 미문화원 점거는 사전에 완벽하고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었다.
성균관대에서는 미문화원점거 불과10분후 교내방송을 통해『11시44분 점거에 성공했다』 고 실제점거시간보다 20분 앞당긴 시간으로 알려 미리 계획된 사건임을 알수 있었다.
고대에서는 23일 아침 점거학생들이 미리 만든 유인물을 학생회 간부들에게 맡겨놓아 점거와 거의 동시에 이를 알리는 유인물이·교내에 뿌려졌다.
서울대와 성대에서는 점거직후 미리 준비한 벽보가 나붙어 점거사실이 즉시 학생들에게 알려 졌고 때맞춰 경희대·중앙대에서는 동부·남부지역 대학생 연합시위를 벌이고 곧바로 점거농성 지지데모로 바뀌었다.
검거학생들을 필담을 통해 지난 14일 연세대에서 열린 광주사태 위원회에서 미문화원을 점거, 농성키로 결정한 뒤 거의 매일 만나 점거계획을 논의했었다고 털어놓았다.

<교내방송>
성대에서는 점거 10분후인 23일낮 12시15분쯤『상오11시44분 5개대생 80여명이 미문화원 점거에 성공했다』고 교내방송을 통해 학생들에게 알렸다.
교내방송은 5분뒤 다시『성대생 22명, 서울대생 12명…』등 농성숫자를 비교적 정확히 알리는 방송을 했다.
이밖에 서강대에서도 점거직후 교내방송으로 학생들에게 점거사실을 알렸고 성신여대에서는 학생회장 이수혜양(24·정관리과4년)이 하오1시쯤 교문 앞에서 핸드마이크로 알려 학생회 간부들은 점거사실을 미리 정확히 알고 있었다.

<벽보·유인물>
고대 반외세·반독재 민주화투쟁 위원장 이정훈군(23·사학과4년)과 의대학생회장 김영수군(25·본과4년)이 학교를 떠나기 전「우리는 왜 미문화원에 들어가야만 했나」라는 제목의 유인물 등을 학생회 사무실에 맡기고 점거와 동시에 학생들에게 배포할 것을 부탁했다. 학생회 측은 낮 12시30분쯤 이들로부터「점거성공」소식을 전화로 전해 듣고 즉시 유인물을 배포했다.
서울대에서는 점거와 거의 동시에 미리 준비했던 유인물과 농성소식을 알리는「급보」 가 「자유의 벽」벽보판에 나붙었고 성대에서도 같은 시각에 벽보판에「속보」와 함께 대형 유인물이 나붙었다.
이밖에 연세대·서강대 등에서도 점거 l시간쯤 후인 하오1시쯤 일제히 벽보와 유인물이 나붙었다.

<지지시위>
23일 하오1시부터 경희대 본관앞 민주광장에서 열린「전학련 동부지역평의회」에는 10개 대학 7백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고대 총학생회장 허인회 군으로부터「미문화원 점거농성투쟁 중간보고」를 들을만큼 신속했다.
학생들은 지지시위를 벌이기로 했으나 교문밖 진출이 좌절되자 하오4시2O분 다시 모여 ▲24일부터 동맹휴학 ▲24일하오7시 서울역 앞 집결 등을 결의했다.
또 하오1시30분부터 숭전대에서는「전학련 서울남부지역 2차 협의회」가 7개 대학 1천
여명의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열려 농성점거사실이 알려지자 즉시 지지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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