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력과 실리의 접전····흑 「바꿔치기」주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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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8단의 흑1, 3, 5는 이번 대결 다섯 판을 통틀어 처음 나온 포진. 두 대국자 모두 판마다 새롭게 두려는 의도가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할까.
조왕위는 백2, 4, 6의 전형적 실리위주로 맞섰다. 흑15는 요즘 유행하고 있는 수법으로 이채로운 착상. 백22까지는 당연한 코스였다. 서8단은 『껍질만 차지했구나…』라고 혼잣말로 되뇌며 장고 끝에 흑23.
여기까지 흑은 세력, 백은 실리의 뚜렷한 양상을 보여 매우 흥미로웠는데, 조왕위가 줄기차게 실리를 추구한 백24는 침착의 도가 지나쳤다는 국후 결론이다. 이 수로는 34의 왼쪽에 두어 세력삭감에 나설 시기였다는 풀이다.
흑25, 27, 29로 되어서는 일단 흑이 호조·흑39는 기세였으며, 흑41은 정수였다. 흑43은 서8단 회심의 요소선점. 백으로서는 진작 114의 곳에 껴 붙여 흑111의 응수를 강요하지 못한 것이 크게 후회스러운 장면이었다.
그것은 큰 차이였다. 세의 불리를 통감한 조왕위가 백80 등의 비상수단을 강구했지만 서8단은 흑97까지의 침착한 「바꿔치기」로 백의 의도를 무산시켰다.
백128 이하 142까지는 던질 곳을 찾은 마지막 몸부림이었으나 흑143까지의 정확한 응수에 백은 살 길이 없었다.
흑171, 173도 재치가 번뜩인 묘수였다. 설상가상으로 응수가 난처해진 서왕위는 마침내 투우했다. 명인과 기왕타이틀을 차례로 잃은 서8단이 국수전에서도 지고 난 후 마지막으로 남은 왕위전에서 사력을 다해 두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보인 한판이었다.
소비시간 백 3시간19분, 흑 4시간46분.<지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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