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모두 B형인데 딸은 AB형 돌연변이 ‘시스-AB형’ 나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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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B형 남자와 B형 여자가 결혼해 낳은 아이의 혈액형은?

조덕·신희봉 교수 국제학술지 보고
“29세 한국 여성이 새 혈액형 시조”

 A. B형 또는 O형.

 중학교 과학 교과 수준의 상식적 문제와 정답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상식을 깨는 일이 생겨났다. 2년여 전 난소낭종 수술을 위해 병원을 찾은 여성 A씨(29)는 ‘시스-AB 혈액형(cis-AB)’을 가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시스-AB형은 부모 중 한쪽에서 AB형에 가까운 독특한 유전형질을 물려받아 형성되며, 인구 1만 명당 3~4명꼴로 존재한다. 일반 혈액형 검사에선 단순히 AB형으로 나오기 때문에 정밀 검사로만 판별할 수 있다. 시스는 프랑스어로 ‘한쪽에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A씨의 부모 중 AB형이 없었다. 모두 B형이었다. 기존 상식으로는 A씨는 시스-AB형을 가질 수 없다.

 이는 A씨 본인에게서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생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가장 흔한 시스-AB형(cis-AB01)은 A형 유전자가 살짝 B형으로 바뀌면서 두 가지 형질(AB형)을 동시에 갖지만, A씨는 반대로 원래 B형인데 살짝 A형으로 유전자 돌연변이가 생긴 것으로 분석됐다. 삼성서울병원 조덕 교수와 순천향의대 신희봉 교수는 A씨를 새로운 시스-AB형(cis-AB09)의 시조(始祖)로 국제학술지에 보고했다고 20일 밝혔다.

 시스-AB형은 일상생활엔 문제가 없다. 수혈 받을 때만 조심하면 된다. 적혈구는 O형, 혈장과 혈소판은 AB형으로 따로 받아야 한다. 모르고 AB형 적혈구를 수혈했다간 용혈(적혈구 막이 파괴되면서 헤모글로빈이 유출되는 현상) 같은 부작용이 나타난다.

 시스-AB형은 국내에서는 호남지역에 집중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전국에 흩어진 상태다. 시스-AB형과 O형이 결혼하면 자녀는 AB형 또는 O형이 된다. 통상 AB형과 O형의 자녀가 A형 또는 B형을 갖는 것과 다르다. 이 때문에 자신이나 배우자가 시스-AB형임을 모르는 커플 사이에서 공연히 외도를 의심하는 경우가 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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