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 "우린 역전에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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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깊어지고 승부의 추가 이미 기울었다고 느낄 때 팬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한다.

그러나 진짜 승부는 이때부터다. 짜릿한 역전승이 터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승리의 쾌감은 말로 할 수 없다. 야구의 진짜 묘미로 역전승을 꼽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이자 감독까지 지냈던 요기 베라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는 명언을 남긴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선두 SK의 역전 드라마가 화제다. 19일 현재 SK의 성적은 38승1무20패다. 38승 중 17승이 역전승이다. 역전승 비율이 무려 45%다.

특히 최근 다섯경기에서 거둔 4승(1패) 중 세차례가 역전승이다. 그만큼 SK의 뒷심이 단단하다는 뜻이다.

▶소총에서 대포까지

시즌 개막전 전문가들은 "SK는 중심타선이 약하다"는 지적을 많이 했다. SK가 1위에 오른 뒤에는 '번트 야구'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SK 조범현 감독은 "우리 팀 홈런수를 한번 찾아보라"며 자신있게 되받아쳤다. 팀 타율 3위(0.279)인 SK의 팀 홈런수는 66개로 삼성(1백1개)·현대(82개)에 이어 3위다.

SK는 지난 18일 문학 기아전에서도 8-9로 뒤진 8회말 조경환의 역전 2점홈런으로 역전승했고, 지난 13일 문학 한화전에서도 4-5로 뒤져 패색이 짙던 9회말 이호준은 동점홈런을 쏘아올려 연장 10회말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제 SK는 한방으로 분위기를 뒤집는 '강팀'으로 거듭났다.

▶기득권은 없다

SK의 조범현 감독은 '기득권이 없는 사람'으로 자처한다.

코치 출신으로 올해 처음 감독으로 부임한 조감독은 대선배들처럼 카리스마나 독특한 야구관을 이뤄놓지 못했다.

기득권이 없다는 것은 무(無)에서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런 만큼 조감독에게는 이기는 것이 지상과제다. 팀도 그걸 원했다. 그래서 초반에 번트작전이 많았다. 세밀한 작전으로 한점씩 보태며 승수를 쌓았다. 그 결과 SK는 올해 16번의 한점차 승부에서 12승4패를 기록 중이다. 덕분에 만년 하위팀이라는 이미지를 씻어냈고, 선수들도 '패배의식'을 버리기 시작했다.

이렇다 할 스타 없이 단단한 조직력으로 뭉친 SK의 요즘 모습은 '역전에 산다'는 영화의 야구판 버전인 셈이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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