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발은 왜 안 올라가지"…태권도 배우는 노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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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여기서 허리를 더 꺾으면 또 침 맞으러 가야 한다니까.” “사부님은 저리 가시라니까요. 앞에 있으면 자꾸 이자(잊어) 묵잖아요.”

지난 7일 강원도 춘천시 석사동 종합체육회관. 가수 남성일이 부르는 ‘오부자 노래’가 스피커를 타고 흐르자 여기저기서 리듬에 맞춰 ‘퍽, 퍽’ 샌드백 치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조금 뒤 국민체조 음악이 울려 퍼지자 할아버지 할머니 30여 명이 줄을 맞춰 서더니 “하나, 둘, 셋, 넷” 구호를 외치며 몸을 푼다. 60~80대 노인들로 구성된 이들은 태권도 공인 1단, 검은띠를 따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

실버태권도 교실은 지난해 3월 시작됐다. 강원도 대표선수들을 지도하던 태권도 공인 9단 정길춘(75)씨가 춘천시에 노인들을 위한 태권도 교실을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정씨는 “운동을 그만두고 술을 많이 마셨다가 뇌졸중에 걸렸다”며 “문득 나 같은 노인들을 위한 건강 교실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처음 교실을 개설했을 땐 회원이 단 두 명뿐이었다. 정씨는 “열흘 넘게 회원이 오지 않아 넓은 체육관에서 나까지 셋이서 운동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입소문이 퍼지고 춘천시 홍보지에도 소개되면서 회원이 늘기 시작했다. 현재 이곳에서 태권도를 배우는 노인은 70여 명. 지난해 8월부터는 오전·오후반으로 나눠 수업할 정도로 인기다.

‘형님반’으로 불리는 오후반 회원들은 지난해 3월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해 지금은 빨간띠를 매고 6장을 배우고 있다. ‘동생반’인 오전반 회원들은 대부분 파란띠로 현재 태극 4장을 익히고 있다. 최근 배우기 시작한 흰띠 회원들도 의욕에 넘친다. 파란띠 선배들을 바짝 뒤쫓아 승단 심사를 함께 받는 게 목표다. 이미 태극 3장까지 익힌 상태다.

흰띠인 이효희(70·여)씨는 “10년만 젊었어도 금방 따라잡을 텐데”라며 “남들보다 늦은 만큼 남은 기간 더 열심히 훈련에 참여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빨간띠 심사를 앞둔 배진태(70)씨도 “주변에 태권도 단증이 있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 공인1단이 되면 가장 먼저 친구들에게 자랑할 생각”이라며 웃었다.

이들의 목표는 내년 5월 국기원 승단 심사를 통과해 공인 1단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태극 8장과 지정 품새, 약속 겨루기 등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정씨는 “회원들이 잘 따라줘 조만간 약속 겨루기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모두들 승단 심사에 합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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