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 허문 독일, 유럽 최강국 복귀 ‘통일은 대박’이란 말 세계에 과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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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호 10면

역사적인 독일 통일이 이뤄진 1990년 10월 3일 베를린 제국의회 건물 앞에 대형 독일 국기가 게양되고 있다. 통일 25주년인 3일 베를린을 비롯한 독일 전역에선 성대한 기념행사가 치러졌다. [AP=뉴시스]

3일로 독일 통일 사반세기를 맞았다. 동독(DDR·독일민주공화국)이 서독(BRD·독일연방공화국)에 편입하기로 한 ‘통일조약’에 따라 실제로 하나가 된 지 25주년이 되는 날이다. 수도 베를린을 비롯, 독일 전역에선 동서 통합을 기념하는 성대한 축하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5년 사이 동독 지역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했고, 동서의 정치·사회제도는 완벽히 통일됐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동독의 주택들은 잘 정비되고 도로·통신시설 등 인프라가 서독 못지않게 잘 갖춰져 있다. 독일을 여행하다 보면 어디가 동부인지 어디가 서부인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무너진 베를린 장벽이나 동서 국경 철조망 흔적을 기념하고 구분하기 위해 일부를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


 하나 된 독일은 지난 25년간의 막대한 통일비용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난관을 뚫고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재부상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재정·경제위기 가운데서도 독일의 경제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실업률은 최저 수준을 유지해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지난해에는 재정균형을 이루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독일은 시리아·이라크 등 중동 내전국가의 난민들이 가장 정착하고 싶어하는 국가로 꼽히기도 한다.


동독 지역 지원 세금 폐지도 눈앞하지만 여전히 동·서독 간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고 완전한 통합을 위해선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베를린 인구·개발 연구소’의 라이너 클링홀츠 소장은 “한때 분단됐던 양측이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세대가 더 지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전했다.

 독일 정부가 최근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동독 지역의 국내총생산(GDP)은 서독 지역의 67%, 1인당 GDP는 서독의 75% 수준이다. 1990년 통일 이후 동독의 GDP는 배로 늘었다. 조세 지출이나 복지제도를 통해 부의 재분배가 이뤄져 실제 생활수준의 차이는 거의 없다. 동독의 1인당 월 가처분소득은 91년 595유로(약 79만원)에서 2011년엔 1416유로로 배 이상 불어났다.


 반면 서독은 같은 기간 1148유로에서 1722유로로 50%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일부 동독 신연방주 지역은 서독 구연방주보다 더 풍요하게 살기도 한다. 2011년 기준 동독 포츠담의 1인당 연간 가처분소득은 1만7148유로인 데 비해 서독의 오펜바흐는 1만6483유로, 겔젠키르헨은 1만6240유로였다. 더 이상 연방 차원의 경제지원을 기계적으로 동서로 나누어 할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졸리(Soli)라 불리는 ‘연대세(稅)’는 주로 동독 지역에 집중 지원됐는데 2019년까지만 거두고 폐지된다. 이후의 동독 경제촉진을 위한 지원은 새로운 기준에 따라 이뤄질 예정이다.


 동독의 노동생산성은 서독의 71% 수준으로 따라잡았다. 실업률은 동독이 9.8%로 서독의 5.8%에 비해 높은 편이다. 하지만 동독의 실업률이 한때 20%를 넘나들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매우 안정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인 차이는 존재하지만 동독 시절의 어려움을 실제로 경험했던 사람들은 통일 후 불과 25년 만에 동·서독 경제의 차이가 이렇게 줄었다는 것을 기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동독 일부 지역선 네오나치주의 극성통일 후 동독 인구는 200만 명이나 줄었다. 91년 1450만 명에서 2013년에는 1250만 명으로 감소했다. 이에 따라 독일 전체 인구에서 동독이 차지하는 비율은 18%에서 15%로 낮아졌다. 통일 후 동에서 서로 간 이주자는 330만 명, 반대로 서에서 동으로 옮겨간 사람은 210만 명이다. 동독의 인구 감소 경향은 향후 경제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동독 지역의 실업률을 낮추고 경제력을 서독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다. 연방 정부의 동독특사 이리스 글라이케는 “동독 지역에 대기업의 수가 적다”고 말했다. 글라이케는 동독 기업들의 국제화와 혁신 수준, 생산성도 서독에 비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첨단 과학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도 서독에 비해선 매우 적은 편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들이 속속 동독 지역에 들어서고 있는 것은 앞으로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동독 일부 지역에서 보이는 극단주의 경향은 부정적인 단면 중 하나다. 네오나치주의를 신봉하는 극우파가 드러내놓고 활동하고 있다. 이슬람과 이민을 반대하는 단체의 과격한 시위가 폭력사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인구가 17%에 불과한 동독에서의 외국인 혐오범죄는 전체의 47%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다. 이 때문에 동독인들이 25년 전 어렵게 스스로 쟁취한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는 운동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독일 통일이 언제 완성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동·서독 간에 존재하는 경제력이나 ‘멘털’의 차이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통일 사반세기를 맞는 현재 그 자체가 잘못됐다고 문제 삼는 사람은 없으며, 특히 젊은 세대에 있어서는 오시(Ossi·동독인)니 베시(Wessi·서독인)니 구분하는 것이 거의 의미가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동독인들이 목숨을 걸고 쟁취했던 ‘자유’에는 동서의 차이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 면에서 독일은 벌써 통일 완성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독일 통일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대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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