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국 함정에 빠진 중국 … 성장 모델 재조정할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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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의 엔진인 중국 경제가 식어가는 조짐에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늦출 정도다. ‘중국 경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가 요즘 글로벌 시장의 화두다. 마침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통화정책위원회(한국의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인 황이핑(黃益平·사진) 베이징대 교수가 21일 서울에서 강연했다. 세계경제연구원(IGE·이사장 사공일)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연 조찬 강연회에서다.

황이핑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 세계경제연구원서 조찬 강연
경제 성숙하며 성장 둔화하는 단계
성장률은 5년간 6~7% 유지할 것

 황이핑 교수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난 여기서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강연한다”며 “중국 경제의 둔화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 경제 성장의 둔화를 주기적 요인과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했다. 그는 “지난 30년간 연평균 25%씩 성장한 수출이 최근에는 5%대로 뚝 떨어졌다”며 “수출 감소는 주기적 문제인 만큼 세계 경제가 견실하게 회복하면 중국 경제 실적도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 둔화는 일시적인 문제라는 얘기였다.

 반면 황이핑 교수는 성장 잠재력이 사라지는 구조적인 요인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중진국의 함정’에 빠졌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11년 초까지 10%를 웃돌다가 올 상반기 7%로 낮아졌다. 경제가 성숙하며 성장률이 둔화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그는 “매년 300만 명의 노동자가 줄어드는 인구 구조의 변화도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며 “대규모 투자와 과잉 생산으로 총요소 생산성(TFP)도 낮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TFP는 노동과 자본 등 생산 요소가 전체 산출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TFP 하락은 성장의 걸림돌이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황이핑 교수는 “성장 모델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풀어야 하는 ‘중국만의 (독특한) 문제’도 언급했다. 사회주의 경제에서 시장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이중 정책이다. 국유기업을 유지하는 중국에서 상품 시장은 시장 원리로 움직이지만, 노동·자본 등 요소시장에서는 정부가 엄격하게 통제한 탓에 왜곡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 경제가 지난 30년간 요소 가격을 낮게 억제해 국유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인위적으로 조장해왔다”며 “국유 기업과 민간 기업이 하나의 트랙 위에서 공정하게 경쟁한다면 생산 비용이 급격히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좀비 기업’ 정리를 포함한 중국 정부의 국유기업 개혁 정책이 인플레이션 등 거시 경제 변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황이핑 교수는 우울한 그림만을 그리지는 않았다. 중공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구조 개혁이 진행되는 만큼 “경기 둔화에도 중국 경제성장률은 앞으로 5년간 6~7% 선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 근거는 견실한 모습을 보이는 노동 시장이다. 알리바바와 샤오미(小米)·화웨이(華爲) 등 신흥 산업이 강세를 보이는 데다 서비스 산업이 발전하며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어서다. 2008년 이후 소득 불평등 상황을 보여주는 지니 계수가 낮아지는 등 소득 분배도 개선되는 모습이다. 그는 “중국 중소기업의 성장세 등 눈에 드러나지 않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중국 경제를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하이 증시 폭락에 대해선 “주식 시장이 중국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당국이 안정화 정책을 펼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시장의 신뢰 회복”이라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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