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속전속결 구조조정 … 부채비율 500% 이하 유지가 열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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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 로드맵이 마련됐다. 이르면 다음달 말까지 실태조사를 마친 뒤 산업은행(대주주)·수출입은행(최대 채권은행) 주도로 맞춤형 지원에 들어간다. 원래 3개월 가량 걸리는 실사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패스트트랙(속전속결)을 통해서다. 구조조정 장기화에 따른 기업 가치 하락을 막자는 취지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21일 금융위원회와 대우조선 대책 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의 구조조정 추진 일정을 정했다고 밝혔다.

 채권단에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대우조선의 부채비율 유지다. 수주잔량 세계 1위인 대우조선의 대외신인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부채비율이 오르면 신용등급 하락으로 수주가 크게 줄 수 있다. 최근 불거진 2조원대 손실이 2분기 실적에 반영되면 대우조선 부채비율은 370%에서 600%대로 크게 오른다. 4조6000억원이었던 자기자본이 2조원 안팎으로 쪼그라들기 때문이다. 손소현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대우조선은 지난해 4월 5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할 때 부채비율 500% 이하 유지 조건을 내걸었다”며 “이 조건을 지키지 못하면 회사채 신용등급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부채비율 상승을 막으려면 손실액을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의 지원이 필요하다. 산업은행은 크게 네 가지(▶유상증자 ▶출자전환 ▶신규자금 지원 ▶대출만기 연장) 방안을 마련했다. 산은 관계자는 “네 가지 방안을 조합하면 자율협약·워크아웃 없이도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손실 규모가 예상대로 2조원대라면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유상증자와 산은·수은의 출자전환(대출금→주식)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손실액이 예상을 뛰어넘으면 시중은행의 출자전환은 물론 대출만기 연장, 이자율 인하 조치까지 동원될 수 있다.

 물론 구체적인 지원 방안은 실사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채권단 내에서 지원방안·부담비율을 놓고 이견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어서다. 양쪽의 의견차는 지난 15일 임종룡 금융위원장 주재로 열린 대우조선 대책 회의에서 이미 드러났다. 당시 산업은행은 “채권단이 모두 고통 분담해야 한다”고 한 반면 수출입은행을 비롯한 다른 채권단은 “대주주인 산은의 유상증자가 우선 해결책”이라며 맞섰다. 결국 금융위가 “일단 산업은행이 총대를 메고 수출입은행이 적극 협조하라”고 교통정리를 해 일단락됐다.

 실사 과정에서 손실 뒷북 반영에 대한 책임 공방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 전 경영진이 여러 차례 해양플랜트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했기 때문에 손실 여부를 알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2009년부터 대우조선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산은 출신이 맡은 만큼 손실을 몰랐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문가는 이번 기회에 큰 틀에서의 조선업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선업의 장기 침체를 감안하면 대우조선 한 곳에 대한 긴급 지원은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STX조선해양·성동조선해양 부실 사태를 겪고도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대우조선 손실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건 큰 문제”라며 “금융당국이 조선업종의 부실감지시스템 강화와 경영 내실화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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