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서 시비 중 "X발, X같네" …법원 "모욕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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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과 다투던 중 대상을 지칭하지 않고 혼잣말로 욕설을 했다면 모욕죄가 성립될까.

서울서부지법 형사1부(부장 한영환)는 지하철에서 시비가 붙어 말다툼을 하다 욕설을 한 혐의(모욕)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김모(35)씨에 대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2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지난 2013년 10월 11일 늦은 밤, 김모(35)씨는 술을 마시고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가던 중 실수로 옆에 앉아있던 A씨의 허벅지에 MP3를 두 차례 떨어뜨렸다. A씨는 김씨가 사과하지 않자 항의했고, 이에 김씨는 오히려 “기분 나쁘냐”며 되받았다.

실랑이를 벌이던 김씨와 A씨는 급기야 2호선 아현역에서 함께 내렸다. A씨가 역무실에 가서 신고하기 위해 계단을 2~3칸 정도 올랐을 때, 김씨가 갑자기 “이런 XX, X같네”라고 욕설을 내뱉었다.

이후 A씨는 김씨가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에게 욕을 했기 때문에 모욕죄에 해당한다며 처벌을 요구했고,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형법상 모욕죄를 적용해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객관적으로 피해자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훼손할만한 모욕적 언사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비속어를 사용해 무례하거나 불손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목적지에 가지 못한 채 중간에 내려 역무실에 가게 된 상황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취지로 볼 여지가 있다”며 “A씨보다 2~3계단 밑에 서있는 상태에서 한 말이라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김씨의 표현이 내포하는 모욕의 정도도 일반인이 일상생활에서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상식 밖으로 행동했을 때 또는 상황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흔히 사용하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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