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협상의 핵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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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야가 국회의원선거법 협상테이블에 마주앉게 된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현행 선거법의 불합리한 점을 고쳐야한다고 목청을 높여온 야당의 입장은 말할 것도 없고 집권당으로서도 선거를 앞두고 그러한 요구를 묵살하기에는 국민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현행 선거법에 모순이나 실행 불가능한 조항들이 많다는 사실은 야당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부인하기 어렵다.
가령 선거운동기간(국회의원선거법 제38조)만해도 당해 후보자의 등록이 끝난 때부터 선거일 전까지만 할 수 있다. 뿐더러 선거운동원의 수는 현행선거법대로 하면 동·읍·면 단위로 1명씩밖에 들 수 없으며 동원할 수 있는 자동차나 선박에 대한 규제도 엄격하다. 이건 선거운동을 하지 말라는 얘기나 같다.
이 같은 엄격한 제한조항으로 신인이나 소속정당이 없는 후보들의 정계진출이 어려워지는 것도 그렇지만, 아무리 지키려해도 지킬 수 없는 법이 되고만 셈이다.
물론 법을 이렇게 까다롭게 한 것은 선거운동의 과열로 인한 갖가지 부작용을 없애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누구도 지킬 수 없고 지키지도 않는 법조항이 위법정신을 왜곡시킬뿐더러 결과적으로 공명한 선거분위기를 흐리는 원초적인 원인을 이룬다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선거법은 한마디로 기구한 우리 헌정사의 산물이다. 제3공화국 때의 선거법은 최고회의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현행선거법은 입법회의에서 제정된 것이다. 선거법에서 산견되는 모순점들은 선거의 당사자인 국회가 아닌 제3군에 의해 만들어진데서 비롯된 것이다.
어디까지 고쳐져야 만족할만한 것인지는 정당에 따라,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잘못되었거나 왜곡되었던 부분들이 이번 협상을 통해 상당히 개선될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으로 본다.
정당간의 이해가 가장 날카롭게 대립되는 선거구 증설문제에 관해 민정당이 「1구 다인제」를 찬성하는 듯 시사한 것은 협상에 임하는 집권당의 탄력적인 자세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하고 싶다.
증구문제는 평등선거의 원칙에 따라 당연한 거론이다. 인구 10만5백44명인 선거구와 인구 93만6천명인 선거구가 똑같이 국회의원을 두 명씩밖에 선출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말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모순이다.
또 현행 전국구의 배분 방식은 선거구를 인구비례에 따라 조정하는 문제 이상으로 꼭 해결해야 할 과제다.
대체로 전국구제도는 정국의 안정, 직능대표의 필요성, 신인기용 등 이점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배분은 헌법이 명시한대로 의석이나 득표율에 비례해야함은 말할 것이 없다.
어느 의미에서건 전국구제도는 유신시대의 유정회와는 다른데도 현행선거법은 제1당이 전국구 의석의 3분의2를 차지하는 것으로 정해놓았다.
기득권을 가진 정당쪽이 유리한 조항을 고치는데 선뜻 응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유권자의 입장에서 볼 때 선거는 4년만에 한번 밖에 돌아오지 않는 유일한 정치참여의 기회다. 따라서 국민은 누구나 자기가 던진 한 표의 권리가 공명하게 행사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국민의 이런 시각을 의식해서 협상에 참여하는 정당들은 당리당략에만 집착하는 소승적인 차원은 벗어나야 할 것이다. 모처럼 열리는 여야협상이 한국의 정치발전을 기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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