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호텔 도어맨과 맥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24호 04면

한번 본 전시를 또 보게 된 것도 인연입니다. 이번 런던 출장길에 빅토리아&알버트 뮤지엄에서 본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터 맥퀸(1969~2010)의 ‘야만의 아름다움(Savage Beauty·3월 14일~8월 2일)’ 이야기입니다.

2011년 6월 뉴욕 출장길에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갔다가 그야말로 우연히 보게 된 전시였는데,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두 번 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 ‘이제 올해는 더 이상 전시를 보지 않아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의 패션이 어떤지 잘 몰랐어도, 전시장을 가득 메운 기묘한 에너지에 압도된 것이 저 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고향에서 열리는 전시는 얼마나 다를까. 미국전 큐레이터였던 앤드류 볼턴이 의상 앞에 선풍기를 틀어 역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면 영국 ‘선수’들은 그로테스크하고 음험한 분위기를 강조했더군요. 상상을 넘어서는 재료로 만든 옷을 보면서 관람객들은 “역시 천재는 일찍 세상을 뜨는군”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홀린 듯이 도록을 사서 호텔로 돌아오는데 맥퀸전 무늬가 새겨진 V&A 쇼핑백을 본 도어맨이 제게 갑자기 말을 붙였습니다. “손님도 보셨군요. 저는 이번 주말에 보러갈 겁니다. 기대가 무척 크네요.”

‘영향력을 미친다’는 이런 것을 뜻하는 말이겠죠. 평소 패션 매장 근처에는 별로 얼씬거리지 않는 제가 기어이 알렉산더 맥퀸의 매장을 찾아 들어갔으니 말입니다.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