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성완종 리스트 수사, 루머에 현혹되지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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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성완종 리스트’는 정치지형을 바꿀 좋은 재료다. 고비용-저효율의 정치시스템을 확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치권과 재계의 부패 연결고리를 끊는다는 근사한 명분도 갖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부터 모두 밝혀져야 한다. 검찰도 수사의 투명성을 보여줘야 한다. 리스트에 그만큼 무서운 폭발력이 잠재돼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수사팀에 전권(全權)을 주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하지만 수사 여건은 만만치 않다. 정치권과 SNS 등에서 횡행하는 여러 종류의 성완종 리스트가 국민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그 진원지는 정치권과 그 주변으로 보인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정략적으로 사건을 해석하고 있다. 덩달아 ‘찌라시’ 수준의 분석과 전망이 그럴듯하게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성 전 회장의 메모 속 8명 외에 또 다른 유력 정치인들의 비리 의혹 소문도 그중 하나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과거 수사도 거론되고 있다. 당시 축적됐던 친노(親盧) 정치인들의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가 재개될 것이란 소문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했던 과거까지 엮어 밑도 끝도 없는 얘기가 춤을 추고 있다.

 이런 루머의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 절차를 고려할 때 진실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성 전 회장의 55자 메모가 공개되고 이틀이 지나 구성된 문무일 수사팀은 지난주 경남기업 등을 압수수색했다. 수사팀은 이번주부터 성 전 회장 측근들을 소환해 로비 리스트를 입증하기 위한 수사를 벌일 방침이다. 이완구 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 등의 주변인들에 대한 소환 조사도 시작될 전망이다.

 돌이켜 보면 대형 스캔들 수사 때마다 수많은 살생부(殺生簿)가 관행적으로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실체가 드러난 적은 없었다. 오히려 검찰 수사에 혼선만 줬을 뿐이다. 수사팀은 확인되지 않은 리스트에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선 8명에 대한 수사에 집중해 줄 것을 촉구한다. 수사 과정에서 추가로 드러나는 다른 사람들의 범법행위는 그 이후 수사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