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세 귀족 엘리트 보수당 '구원투수'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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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보수당의 새 당수로 선출된 데이비드 캐머런이 결선투표 결과가 발표된 6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의사당으로 출근하고 있다. 헨리 7세의 혈통을 이어받은 귀족 출신이면서도 서민적인 이미지를 내세워온 그는 자전거 타기와 정원 가꾸기를 좋아한다. '노팅힐(캐머런이 사는 동네)의 멋쟁이'로 불리는 그는 준수한 외모와 늘 웃는 얼굴로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다. [런던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보수당이 젊은 귀족 데이비드 캐머런(39) 의원을 새 당수에 선출했다. 캐머런은 6일(현지시간) 발표된 보수당원 우편투표에서 13만4446표를 얻어 6만4398표를 얻은 데이비드 데이비스(57) 의원을 두 배 이상의 표 차로 눌렀다.

◆ 캐머런은=전형적인 귀족 엘리트다. 그는 헨리 7세의 후손으로 엘리자베스 여왕과도 먼 친척이 된다. 아버지는 증권계의 거물이고 어머니는 치안판사다. 캐머런은 귀족들이 다니는 명문사학 이튼 스쿨을 거쳐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했다. 곧바로 보수당의 정치 자문 역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정계에 입문하자마자 승승장구해 예비 내각의 각료직을 거쳤다. 10월 시작된 보수당의 당수 경선에서 선풍적인 바람을 몰아 주목받았다. 결선투표에서 맞붙었던 데이비스는 보수당의 중진 거물이었고, 대중적인 지명도도 높았다. 그러나 개혁을 주장하는 젊은 멋쟁이 귀족의 바람을 이기지 못했다.

아내 사만사(34) 역시 귀족 가문 출신이다. 런던 중심가에 있는 명품 문구점 스마이슨의 책임자로 세계 저명인사들을 단골로 두고 있다.

그러나 캐머런은 서민적이고 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해 왔다. 보통 영국인의 취미 생활인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고, 의사당에도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흑맥주를 즐겨 마시고 말보로 라이트를 피운다. 당수로 확정되던 날에도 자전거를 타고 의사당에 출근했다.

◆ 차기 총리 유력=캐머런의 등장에 주목하는 이유는 차기 총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7일 "캐머런의 당선은 노동당에 집권 이래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보수당이 2009년으로 예정된 총선에서 집권 노동당을 이기고 승리하는 데 캐머런의 지도력과 이미지가 크게 기여할 것이란 전망이다.

캐머런은 '보수당의 블레어'로 불린다. 토니 블레어 총리가 좌파 노동당을 개혁해 3연속 집권의 영광을 이뤄냈듯 캐머런이 우파 보수당을 개혁해낼 것이란 기대다. 캐머런은 유세 과정에서 늘 "보수당은 변해야 한다. 그리고 변할 것이다. 반드시 변하게 할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는 당수로 확정된 직후 기자회견에서 "넘어야 할 산이 높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변화와 개혁의 개념은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다. 보수주의라고 해서 냉정한 경쟁과 시장질서만 강조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소외된 지역과 불우한 계층에 대한 관심이다. 블레어 총리의 개혁이 좌파 정당의 우경화라면 캐머런의 개혁은 우파 정당의 좌경화인 셈이다. 무엇보다 그의 당선 가능성이 높이 점쳐지는 것은 1990년대 중반 노동당 당수에 올랐던 블레어처럼 신선하고 젊은 이미지 때문이다. 영국 유권자들은 이미 3기 집권에 들어간 집권 노동당을 대신할 신선한 대안을 요구해 왔다. 그래서 당수 경쟁에서 패배한 데이비스 의원은 "이번 당권 경쟁은 다음번 선거에서 보수당이 승리할 서막"이라고 말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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