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마다 막 사니 … 막 풀어도 힘센 엔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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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엔저 유도가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엔화는 미국 달러와 견줘 올 들어서만 0.13% 정도 떨어졌다. 유로화(-12.73%)나 영국 파운드화(-5.88%) 등과 견줘 강달러의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하는 셈이다.

 뜻밖의 현상이다. 블룸버그통신은 “각국 중앙은행이 엔화를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라고 14일 전했다. 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에만 각국 중앙은행이 사들인 엔화는 5조4000억 엔(약 54조원)에 이른다. 각국 중앙은행이 엔화를 사들이니 엔화 값은 유로화나 파운드화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중앙은행들은 유로화를 팔았다. 유로화 표시 자산의 대표인 독일 국채(분트)의 금리(만기 수익률)가 -0.2% 선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독일 분트를 보유하면 각국 중앙은행들은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이자를 내야 한다. 외환보유액 운용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바람에 여전히 플러스 금리인 일본 국채를 사들이기 위해 대거 엔화 포지션을 늘리고 있다. 글로벌 국채시장 움직임 탓에 엔저 공세에 대한 견제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사진) BOJ 총재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구로다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물가상승률이 국제원유가 하락 때문에 억눌려 있다. 당분간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0%에 가까울 전망”이라며 “우리(BOJ)는 물가상승률이 2015 회계연도(올 4월~내년 3월)나 2016 회계연도(2016년 4월 이후) 초에 2%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엔화 값이 더 떨어져야 한다. 월가 전문가들은 달러당 140엔 선까지 하락해야 2% 물가 상승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현재 엔화 값은 119엔 선이다.

 그래서 요즘 BOJ의 추가 양적완화(QE)를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호주의 금융회사인 내셔널오스트레일리아은행(NAB)의 레이 아트릴 외환 전략가는 이날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추가 QE를 요구하는 압력이 커지고 있다”며 “구로다가 이달 하순에 있는 통화정책회의에서 추가 QE를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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