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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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석구목사님, 그분은 내가 평생 잊을수 없는 믿음의 아버지이다. 목사님은 한국에 대한 일본의 무단정치가 극에 달하였을때 민족대표 33인가운데 한 사람으로 3·1운동에 가담하여 독립만세를 부른 애국자다. 죽음을 각오하고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나서 목사님은 이렇게 일기에 썼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않으면 한알 그대로 남아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만일 내가 국가독립을 위하여 죽으면 나의 동포 마음속에 민족정신을 심을 것이다」고.
그분의 삶은 하나님과 겨레를 사랑하는데 바쳐진 사랑의 제물이었다. 감옥에서 나온 목사님은 서울과 천안에 있었던 일터를 버리고 평남 진남포지방에 와서 목회를 했다. 그는 평생 남이 가기 싫어하는 작은 교회, 가난한 교회만을 찾아다니며 목회했다.
반동비밀결사를 꾸몄다는 죄명으로 투옥된 목사님은 6·25전란 당시 평양교외에서 총살형을 당했다.
목사님은 끝없이 온화하고 인자하신 분이었으나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살아간 용감한 분이었다. 나는 3월이 돌아올 때마다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던 목사님의 두터운 큰손이 주었던 감촉을 잊을수 없다.
8·15해방후 북한에서 공산당의 압박이 가중해지며 불안가운데서 떨고 있을때에도 목사님은 두려움을 잊고 전도하였다. 목사님과 버스나 차를 함께 타고 갈 때에는 식은땀이 나는 일이 예사였다. 목사님은 공산당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나 벌떡 일어나 찬송가를 부르고 민족주의 감정에 호소하며 전도하였다.
민족의 위기앞에서 교파와 종교의 차이를 초월하여 기독교가 천도교와 불교와 함께 대화하고 협력하여 3·1운동을 일으켰던 자랑스러운 민족의 과거를 회상시키며 복음을 증거하시기도 하였다.
그분은 이나라 이 민족의 밝은 앞날을 위해 썩어져 많은 열매를 거두는 한알의 밀알이 되려고 결단했던 것이다. 신석구목사님이야말로 산위에 높이 세워진 등대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세상의 빛이었다. 그는 사도「바울」처럼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롬1‥16). 물론 목사님을 통해서 밝아온 빛은 그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스스로 빛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통해서 「세상의 빛」을 가르쳤다는 것 때문에 세상의 빛이었다. 신석구목사님,그분은 캄캄한 어두운 북한땅 한구석을 비치며 암흑을 깨쳤던 빛이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다. 나는 1979년 노벨평화상을 탄 유고슬라비아출신의 가톨릭수녀「마리아·테레사」의 전기를 읽으면서 감격하였다.
젊어서 수도원에 들어간 「테레사」는 19세의 젊은시절(1929) 인도를 찾아간다. 성마리아 고등학교라는 귀족들이 가는 학교에서 20년 가르친 수녀는 교장까지 된다.
그러나 2차대전이 끝난 다음해(1946) 캘커타 빈민가의 참상을 본 「테레사」는 평생을 빈민들사이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려 결심한다. 48년부터 단신 빈민가에 뛰어들어간 그녀의 손에는 5루피(한국돈으로 7백원)밖에 없었다.
그녀는 30년이상 빈민가에서 일했다. 처음 5명의 고아로 시작한 고아원은 지금 인도안에서만 해도 30여개소이며 그밖에 죽음을 기다리는 집, 나환자들을 위한 병원등이 있다.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1979년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에서 「테레사」수녀는 아주 소박한 간증을 하였다. 회의에 참석한 많은 종교지도자들을 감명시킨 그녀의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나는 매일 두번 성체를 받습니다. 아침에는 빵의 모습으로 제단에서 성체를 받습니다. 그것이 첫번째입니다. 두번째는 낮에 가난한 사람들사이에서 성체를 받습니다. 예를 들겠읍니다. 얼마전에 캘커타빈민가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흙탕물속에 할머니가 쓰러져 있었읍니다. 일으켜 보니까 몸은 쥐에게 물려있었고 의식이 없었습니다. 급히내집(죽음을 기다리는 집)에 데리고 가서 몸을 닦아주고 따뜻하게 데워주었더니 반짝 눈을 떴읍니다.
그리고 내손을 잡고 웃는 얼굴로 「thank you」라고 말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웃음(smiling), 그것은 정말 아름다웠읍니다(It was so beautiful).』「so beautiful」(정말 아름다웠습니다)이라는 말이 장내를 압도하며, 모두 가련한 인도할머니의 임종때의 미소와 숨을 거두는 순간의 신성한 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수녀「테레사」의 말은 계속되었다. 『그 할머니의 몸은 성체였습니다. 주님의 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 예수가 말씀하시지 않았읍니까? 나는 빵속에 있다고, 그리고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고통당하는 사람들속에 있다고. 나에게 있어서 이 두 말씀은 같은 무게를 가지는 현실이며 거기에서 나는 주님을 받아 먹은 것입니다』「마리아·테레사」수녀의 이같은 초인적인 사랑의 삶은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끝없는 존엄성, 천하보다도 귀중한 대체불가능한 인간의 존엄성앞에 두손을 모아 명상하며 기도하는 영적 삶에서 온 열매라고 보겠다.
30년이상을 빈민들사이에서 그리스도를 섬긴 그녀의 이같은 장한 일은, 어느날 새벽 그녀의 영혼을 향하여 던져진 내적인 부름에 응답하여 단신 캘커타 빈민가에 뛰어 들어간데서 시작한 것이다.
그러는동안 많은 협력자가 나타난 것이다. 누구든지 혼자서는 아무일도 할 수 없으나 먼저 혼자서 시작하여야 한다. 세상의 빛과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하신 예수님의 활동도 그러하였다. 「테레사」수녀가 사랑을 위하여 바친 50여년의 사랑과 봉사의 삶은 빛의 자녀로서의삶, 세상의 소금으로서의 삶 그대로였다. 정말 해야한다고 생각한 것은 혼자서 시작하여야 한다. 그것이 빛과 소금으로서의 삶, 개척자적인 삶이다.
개척자는 누구도 삽으로 파지않은 광야를 개척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사회가 요청하고 있는 일꾼은 바로 한알의 밀알이 되어서 죽음을 두려워 하지않고 생전체를 걸며 미개척지를 파헤치는 신석구목사나 「마리아·테레사」수녀와 같은 개척자다.
우리는 소수라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그것은 오랫동안의 영적훈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감신대대학원장·현대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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