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성장을 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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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맴새난다.』
아들의 느닷없는 말에 나는 바짝 긴장했다. 혹시 내몸에 설겆이 냄새나 땀내가 배어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무슨 냄새지?』
『엄마맴새.』
『엄마냄새 좋으니?』
『엄마맴새 맛있어.』
자신있게 소리치며 가만히 나를 올려다본다. 내 얼굴을 닮은 두개의 작고 맑은 샘.
나는 흐뭇하게 가득 차오르는 가슴으로 아이를 꼬옥 안으며 오묘한 성장과정의 신비를 엿보고 눈이 떠지는듯 했다.
시대가 엄청나게 변했어도 30여년전의 내 어린날들을 그대로 복사해내는 아이의 모습은 경이로운 것이다. 그림책을 펼쳐놓고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귀동냥 해보면 옛날 친정집 벽장문에 붙어있던 능행도 앞에서 혼자서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내 모습 그대로이고, 제 동생과 둘이 「여보」 「당신」하며 노는 것도 어린날의 내모습인 것이다.
이렇듯 아이들은 선도 악도 아닌 백지상태로 태아나 주위환경을 흡수하여 서로 다른 인생이란 그림을 그려낸다고 한다.
환경이 그림내용이 되는 것이라면 좋은 그림을 그릴수 있는 밑바탕이 될 백지의 질도 아이의 일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일 것임에 틀림없다. 백지의 종류도 그림을 그릴수 있는 것에서 그릴수 없는 것에 이르기까지 열손가락으로 꼽아도 모자랄만큼 많은데 우리는 아이에게 그중 어떤 것을 골라준 것일까?
또 앞으로는 어떤 붓과 물감을 아이에게 줄 것이며 어떤 풍경을 펼쳐보일 것인지 모두 어렵게만 생각된다. 우리 부부는 이미 아이가 처음 눈뜬 직후부터 보아온 풍경이 되었으며 아이가 성인이 될때까지 손 뻗으면 닿을수 있는 풍경이 될 것이었다.
우리에게 남은 일은 아이가 좋은 그림을 그릴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박평남 <서울 강동구 방이동 반도아파트 101동8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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